[찾아가는양조장 술기행] "안동의 볕과 바람으로 빚은 밀소주"… 빵 굽던 부부가 세운 '밀과노닐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 이황 선생의 숨결이 닿은 곳에 '밀과노닐다' 양조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이름만큼이나 서정적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 밀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한 부부의 치열한 집념이 녹아 있는 공간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 중에서도 이곳은 지역 농산물과 제조업, 그리고 관광이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빵 굽던 남편과 농사짓는 아내, '안동 진맥소주'를 낳다

밀과노닐다의 박성호 대표와 김선영 이사는 본래 농부이자 베이커였다. 직접 농사지은 우리 밀로 빵을 굽던 부부는 어느 날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왜 우리 밀로 만든 증류주는 없을까?"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진맥(眞麥, 밀의 옛 이름)소주의 맥이 끊긴 것에 아쉬움을 느낀 부부는 직접 양조에 뛰어들었다.

박 대표는 "밀은 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발효와 증류 과정이 까다롭지만, 완성된 뒤의 풍미는 훨씬 깊고 화려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곳의 대표작인 **'진맥소주'**는 100% 안동산 유기농 밀로 빚어진다.

세계가 먼저 알아본 'K-밀소주'의 잠재력

진맥소주는 출시 직후부터 전통주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2020년 세계 3대 주류 품평회인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릿 컴피티션(SFWSC)'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그 품질을 입증했다.

필자가 시음해 본 진맥소주 40도는 기존 쌀 소주와는 궤를 달리한다. 잔에 따르자마자 퍼지는 고소한 밀향과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첫맛은 강렬하지만 목 넘김은 비단처럼 부드럽다. 박 대표는 이를 두고 "안동의 테루아(Terroir)가 빚어낸 시간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공간이 주는 힘, '체험'을 넘어 '휴식'으로

밀과노닐다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서 가진 가장 큰 매력은 공간의 미학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지어진 양조장 건물은 안동의 자연 풍광 속에 조화롭게 녹아 있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양조장 견학을 넘어, 직접 밀 빵을 굽거나 전통주 칵테일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양조장과 함께 운영되는 북스테이(Book-stay) 공간은 애주가들에게는 '성지'와 같다. 안동의 깊은 밤, 갓 증류한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책장을 넘기는 경험은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밀 소주의 세계화, 이제 시작이다"

박성호 대표의 목표는 명확하다. 진맥소주를 한국의 위스키나 진(Gin)처럼 세계인이 즐기는 스피릿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전통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와 호흡하며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 농가와의 상생, 사라진 우리 술의 복원, 그리고 세련된 브랜딩까지. 밀과노닐다는 전통주가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안동의 맑은 물과 직접 기른 밀이 만난 이 투명한 액체 속에, 한국 전통주의 밝은 미래가 투영되어 있었다.

1. 진맥소주 40도 : "전통주 씬의 밸런스 종결자"

40도는 진맥소주의 정체성을 가장 대중적으로 설파하는 '얼굴'이다.

비평: 첫맛에서 느껴지는 곡물의 고소함이 중간의 화사한 꽃향기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아주 미세하게 남는 고소한 빵 풍미가 일품이다. 쌀 소주가 주는 깔끔함이 '여백의 미'라면, 진맥 40도는 '풍성한 질감'을 선사한다.

경쟁력: 위스키에 익숙한 젊은 층이 '니트(Neat)'로 즐기기에 전혀 이질감이 없다. 40도라는 고도수가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목 넘김은 정밀한 증류 기술의 승리다.

2. 진맥소주 53도 : "압도적인 타격감, 싱글몰트와 겨루다"

53도는 애주가들 사이에서 '진맥의 정수'라 불린다. 도수가 올라갈수록 밀 본연의 야생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비평: 잔에 따랐을 때의 점성부터 다르다. 입안에 머금으면 폭발적인 바디감이 혀를 압도한다. 40도에서 은은했던 아카시아 향이 53도에서는 진한 꿀향과 너티(Nutty)함으로 변모한다. 높은 도수가 주는 '타격감' 뒤에 오는 긴 여운은 웬만한 고숙성 싱글몰트 위스키에 뒤지지 않는다.

경쟁력: '독주(毒酒)'가 아닌 '명주(名酒)'로서의 권위가 느껴진다. 중식이나 기름진 한우 육류와 매칭했을 때 입안을 씻어주는 클렌징 능력이 탁월하다.

3. 진맥소주 오크 (Oak Aged) : "전통의 틀을 깬 K-스피릿의 미래"

한국 전통 소주를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이 실험작은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박 대표의 해답이다.

비평: 밀 소주 특유의 과실 향이 오크의 바닐라, 스모키함과 만나 묘한 복합미를 만든다. 자칫 오크 향이 원주의 개성을 잡아먹을 수 있는데, 진맥은 밀의 힘이 강해 오크와 대등하게 싸우며 조화를 이룬다.

경쟁력: 해외 바이어들이 가장 탐낼만한 제품이다. '안동'이라는 로컬 스토리와 '오크 숙성'이라는 글로벌 문법이 만났으니 시장성은 충분하다.

총평: "안동 소주의 새로운 기준점을 세우다"

박성호 대표의 진맥소주는 단순히 사라진 술을 복원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쌀 중심의 한국 증류주 시장에 '우리 밀'이라는 강력한 대안을 제시했으며, 그것을 세계적 수준의 품질로 끌어올렸다.

가격대가 다소 높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으나, 유기농 밀 농사부터 병입까지 이어지는 'Farm-to-Bottle'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이는 충분히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치다. 진맥소주는 이제 안동을 넘어 세계의 바(Bar) 선반 위를 당당히 차지할 자격을 갖췄다.
 

작성 2026.01.03 17:52 수정 2026.01.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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