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영동의 산자락을 오르다 보면,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화려한 간판 대신 잘 익은 흙 내음이 먼저 마중을 나오는 곳. 3대째 포도 농사를 짓고 술을 빚어온 '컨츄리와이너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득 '촌스러움'이라는 단어의 고귀함에 대해 생각했다.
억지스럽지 않은 맛, 기다림의 미학
요즘의 와인들은 지나치게 세련되려 애쓴다. 오크통의 강렬한 향으로 본연의 민낯을 가리거나, 화려한 마케팅 수식어로 대중의 미문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곳의 김덕현 대표가 내놓은 와인은 달랐다.
캠벨얼리(Campbell Early)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저평가받던 품종이 이곳의 옹기 속에서 시간을 통과하자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인위적인 가당을 멀리하고 포도가 가진 본연의 당분과 산미를 끝까지 믿어준 결과다. 그 맛은 마치 꾸미지 않은 시골 노신사의 정갈한 뒷모습을 닮아 있다.
3대를 이어온 고집이라는 유산
와이너리 한편에 놓인 오래된 양조 도구들은 이 집안의 궤적을 묵묵히 증언한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아들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정직'이다.
"농사는 발소리를 듣고 자라고, 술은 기다림을 먹고 익습니다."
그의 말처럼, 컨츄리와이너리의 와인은 속도를 찬양하는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빨리 발효시켜 시장에 내놓는 기술보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낸 포도가 스스로 술이 될 때까지 지켜봐 주는 인내가 이 집 와인의 진짜 레시피였다.
로컬, 가장 세계적인 평범함
우리는 종종 '프랑스식'이나 '이탈리아식'이라는 기준에 우리를 맞추려 한다. 그러나 컨츄리와이너리는 영동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한국인의 식탁에 어울리는 '우리식 와인'의 기준을 세우고 있었다. 맵고 짠 우리의 일상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그 산뜻한 산미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어떻게 가장 보편적인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와인 잔에 담긴 진보랏빛 액체 위로 영동의 노을이 겹쳐진다. 한 모금 머금으니 포도 넝쿨 아래서 땀 흘렸을 농부의 손마디와, 서늘한 지하 저장고에서 숨죽이며 익어갔을 시간들이 한꺼번에 읽힌다.
결국 좋은 술이란 맛을 넘어, 그 술을 만든 이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마시는 일이다. 컨츄리와이너리의 와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당신만의 속도로 정직하게 익어가고 있느냐고.

[시음 노트] 혀끝에 닿는 영동의 계절
1. 컨츄리 산머루 (Dry): 야생의 숨결을 다스리는 법
산머루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술이다. 잔을 채우는 색은 검다 싶을 만큼 깊은 진보랏빛이다. 코를 가까이 대면 세련된 바닐라 향 대신, 비 갠 뒤 숲속에서 올라오는 젖은 흙 내음과 짙은 베리류의 향이 훅 끼쳐온다.
첫 모금은 꼿꼿하다. 산머루 특유의 강렬한 산미가 혀 양끝을 자극하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뒤이어 찾아오는 탄닌은 거칠지 않고, 마치 오래된 고서(古書)의 종이 질감처럼 보슬보슬하게 입안을 감싼다. 오크 칩의 인위적인 향이 없어 포도 씨와 껍질이 가진 본연의 쌉싸름함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기름진 육류보다는 담백하게 구운 버섯이나 들깨를 넣은 나물 요리처럼, 땅의 기운이 강한 음식과 마주 앉았을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을 술이다.
2. 컨츄리 캠벨얼리 (Sweet): 가장 다정한 기억의 재회
우리가 흔히 '포도' 하면 떠올리는 그 달콤한 향수를 가장 정직하게 구현했다. 잔을 흔들면 잘 익은 포도 알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터져 나오는 과즙의 생동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단맛은 끈적이지 않는다. 인위적인 설탕의 무게가 아니라, 뜨거운 여름 햇살을 견뎌낸 과실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분 좋은 나른함'**에 가깝다. 스위트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끝맛이 산뜻하게 떨어지는 것은 양조 과정에서 지켜낸 산도 덕분이다.
이 와인은 격식을 차린 정찬보다는, 해 질 녘 평상에 앉아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사이에 놓여야 제맛이다. 차갑게 칠링해 마시면,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 끝에 건네받는 다정한 위로 같은 맛이 난다.
웅재의 시선으로 본 '마시는 법'
와인은 어렵지 않아야 한다. 컨츄리와이너리의 술들은 더욱 그렇다. 값비싼 크리스털 잔이 없어도 좋다. 투박한 물컵이라도 그 안에 담긴 영동의 바람과 농부의 시간을 읽어낼 마음만 있다면 충분하다.
"술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마시는 것이기에, 컨츄리의 와인은 목을 타고 넘어가기 전 이미 우리의 기억 한 구석을 건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