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더 이상 화면 속 대화 상대에 머물지 않는다. 언어를 생성하던 AI는 이제 물리적 ‘몸’을 얻고 현실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른바 ‘피지컬 AI’의 시대다. NVIDIA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이 “다음은 피지컬 AI의 시대”라고 단언한 배경에는 이미 산업 전반에서 감지되는 구조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더 정교한 로봇을 만드는 경쟁이 아니다. 피지컬 AI는 데이터, 전략, 사회적 수용성, 그리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산업 재편이라는 복합적인 변수를 동반하며 기존 기술 패권의 공식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경쟁의 무기가 ‘AI 두뇌’가 아니라 ‘제조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제조업을 영위해 온 기업들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은 피지컬 AI로 중심축이 이동할수록 자동차와 로봇, 제조 공정에서 축적된 현실 데이터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한다고 진단했다.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에 강점을 가진 빅테크와 달리, 실제 공장을 움직이고 로봇을 제어한 경험에서 나온 데이터는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전략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는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재료를 넘어, 피지컬 AI 시대의 진입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의 이면에 존재하는 ‘지연된 혁신’이다. 대중적으로 휴머노이드 분야의 선두주자로 인식되는 Tesla는 인간의 손을 구현하는 고자유도 로봇 기술에서 예상보다 큰 기술적 병목에 직면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직 계열화 전략은 장기적 통합에는 유리하지만, 단기적인 상용화 속도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Figure AI는 인프라, AI 모델, 클라우드 영역에서 전략적 협업을 선택했고, 그 결과 로봇을 BMW 생산 현장에 투입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이는 폐쇄형 전략과 개방형 생태계 전략의 차이가 시장 전개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세 번째 변화는 ‘진짜 로봇 혁명’이 인간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목받는 휴머노이드와 달리,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대규모 로봇 운용이 일상화돼 있다. Amazon은 물류 센터에 수십만 대의 로봇을 투입해 군집 지능 기반 운영을 수행하고 있다. 이 로봇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전체 공간의 흐름을 예측하고 병목을 사전에 제거한다. 인간의 형태보다 기능과 효율에 집중한 이 방식은 조용하지만 노동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다.
네 번째 변화는 기술보다 더 높은 장벽이 사회적 영역에 있다는 점이다. 인간과 유사한 외형이 주는 심리적 거부감,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 문제는 가정과 서비스 영역에서 로봇 확산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법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로봇이 야기하는 위험을 어떤 기준으로 통제할 것인지는 기술 발전 속도보다 느리게 논의되고 있다.
다섯 번째 변화는 로봇 산업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Skild AI는 로봇의 형태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범용 ‘로봇 두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운영체제가 하드웨어 가치를 재편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범용 소프트웨어가 확산될 경우 로봇 하드웨어는 빠르게 표준화되고, 산업의 주도권은 플랫폼을 설계하는 기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피지컬 AI는 알고리즘 경쟁을 넘어 데이터, 전략, 제도, 플랫폼의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제조 데이터의 재평가, 개방형 생태계의 부상, 비휴머노이드 중심의 실용적 혁신,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소프트웨어 중심 산업 재편이라는 다섯 가지 변화는 향후 산업 구조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AI는 더 이상 스크린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물리적 세계로 진입한 인공지능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사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피지컬 AI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으며, 준비 여부에 따라 기회와 위험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