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주, 심판 속에서도 열려 있던 구원의 문
창세기 6장은 인류의 타락이 극에 달한 장면을 보여준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하나님이 “한탄하셨다”는 표현은 그분의 깊은 슬픔을 드러낸다. 인간의 타락은 단순한 윤리적 실패가 아니라, 창조주와의 관계가 끊어진 영적 파탄이었다. 세상은 번성했지만, 그 번성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풍요와 발전 속에서도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욕망은 기술과 문명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떠난 자아 중심의 삶은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 홍수 이전 세상처럼, 우리는 경고를 듣지 못하는 영적 난청 속에 살고 있다.
그 혼탁한 시대에도 하나님은 한 사람을 보셨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6:9). 노아의 위대함은 그의 능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있었다. 비가 내린 적도 없는 땅에서 방주를 짓는 일은 상식 밖의 행동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자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묵묵히 120년을 버텼다.
그의 순종은 세상에 대한 ‘경고’이자 동시에 ‘희망’이었다. 방주의 크고 묵직한 나무소리는 죄악의 도시 속에서 울린 하나님의 나팔이었다. 노아의 믿음은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하나님은 심판을 명하셨지만, 동시에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방주는 그분의 정의와 자비가 만나는 자리였다. 인간의 악을 심판하되, 그 속에서도 생명을 보존하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겼다.
방주가 닫히기 전까지 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경고를 ‘두려움의 언어’로 오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랑의 신호’다.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돌아오라”고 외치신다.
창세기 6장은 단지 고대의 심판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세상은 여전히 욕망으로 가득 차 있고, 진리보다 편의를 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우리가 그 노아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방주를 짓는 일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세상은 조롱하겠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홍수의 시대에도, 구원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하나님의 경고는 심판이 아니라 초대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는 고백이 다시 들려야 할 때다.
노아의 시대가 오늘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묻고 계신다 — “너는 방주를 짓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