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은 ‘일에서의 해방’이라 불리지만, 재정적인 관점에서는 또 다른 시작이다. 매달 꼬박꼬박 받는 국민연금, 평생 모은 퇴직연금과 배당소득이 노후의 버팀목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금 수령액이 많아질수록 세금과 건강보험료가 함께 오르며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점점 줄어든다. 은퇴자들이 느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의 벽’은 노후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연금은 받는데 돈이 줄어든다? 은퇴 후 시작되는 세금의 역설
국민연금은 은퇴자의 가장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꼽히지만, 일정 금액을 초과하면 과세 대상이 된다. 연간 연금소득이 1,200만 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 신고 대상에 포함되고, 다른 소득과 합산되면서 세율이 높아질 수 있다.
퇴직연금 역시 일시금으로 받느냐, 연금 형태로 분할하느냐에 따라 세금 구조가 달라진다. 일시금 수령 시 한 번에 퇴직소득세가 부과되며, 연금으로 나누어 받을 경우 매년 일정 비율로 과세된다.
문제는 세금이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의 현금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직장 시절에는 급여에서 세금이 자동으로 공제됐지만, 은퇴 후에는 연금·배당·이자 등 다양한 소득이 합산되면서 세금 계산이 복잡해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금을 받으면서도 실제로는 세금을 내기 위해 연금을 받는 꼴”이라는 퇴직자들의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배당과 임대소득의 함정: 세금이 ‘부자 노인’ 프레임을 만든다
노후 재정을 위해 주식 투자나 부동산 임대를 병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배당소득이나 임대수입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오히려 세금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연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금융소득(이자+배당)은 종합소득세에 합산되어 최고 45%의 세율이 적용될 수 있다. 이는 초과 금액만 과세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소득이 누진세 구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담이 크다.
임대소득 또한 마찬가지다. 2주택 이상 보유자가 월세를 받으면 소득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소득이 있는 은퇴자’라는 이유만으로 세금뿐 아니라 사회보험료까지 늘어나는 구조는 많은 은퇴자들에게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세법상 ‘부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세금과 공과금 납부 후 남는 금액이 월 1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세금 체계가 실제 생활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보이는 부자, 숨은 빈곤’ 현상이 발생한다. 겉으로는 연금과 배당으로 소득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세금과 건보료를 제외하고 남는 금액이 적어 노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조용히 빠져나가는 제2의 세금
은퇴 후 재정에 있어 가장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건강보험료다. 직장가입자에서 은퇴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소득뿐 아니라 재산과 자동차까지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시가 5억 원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연 배당소득 2,000만 원이 있는 은퇴자는 월 40만~50만 원의 보험료를 납부해야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료가 사실상 ‘준(準)조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명목상은 보험료지만, 소득이 많을수록 비례적으로 올라가는 구조다. 국민연금으로 받은 돈 중 상당 부분이 다시 건강보험료로 빠져나가며, 세금·건보료·지방세가 삼중으로 노후 재정을 압박한다.
많은 은퇴자들은 건강보험료가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그 부담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매달 납부액을 연간 단위로 환산하면 세금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은퇴 이후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러한 고정비가 치명적인 재정 리스크로 작용한다.
진짜 노후 준비는 소득 설계가 아닌 세금 설계에서 시작된다
은퇴 후 재정의 핵심은 단순히 얼마를 버는지가 아니라, 얼마를 ‘남길 수 있느냐’에 있다. 세금은 노후의 실질적 소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연금과 배당, 임대소득을 설계할 때 세금 구조를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게 과세 구간에 진입해 세후 수령액이 급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금 수령액을 분할해 매년 일정 금액 이하로 조정하면 종합소득세를 피할 수 있고, 배당소득과 임대소득을 분산 관리하면 누진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거나 증여할 시점에 따라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이 달라지므로, 연간 소득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은퇴 설계의 핵심은 자산이 아니라 세금”이라고 강조한다. 연금 수령 시기와 금액, 투자 자산의 형태, 건강보험료 산정 구조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노후의 안정성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노후의 세금은 단순히 재정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은퇴자의 존엄과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일할 때는 세금이 ‘의무’였다면, 은퇴 후에는 그것이 ‘생존의 변수’로 바뀐다. 이제 노후를 준비하는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저축이 아니라, 세금을 통제하는 지식과 전략이다. 결국 진짜 노후의 자유는 세금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