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정치’는 현대의 산물일까.
권력자의 배우자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국가 이미지를 관리하는 역할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 질문의 출발점에 놓인 인물이 있다.
프랑스 제2제정의 마지막 황후 외제니 드 몽티조다.

외제니는 정치 연설을 하지 않았고, 공식 권한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치가 불안정할수록, 대중은 ‘정책’보다 ‘이미지’를 먼저 본다는 사실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 3세의 통치는 출발부터 정당성 논란을 안고 있었다. 여기에 외국 출신 황후라는 조건은 불안을 더욱 키웠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외제니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비판은 그녀 개인을 넘어, 제국 체제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
외제니의 선택은 이례적이었다. 반박하지 않았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녀는 ‘보여지는 권력’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궁정 의례, 공식 행사, 패션과 초상화까지 철저히 관리하며 황후라는 존재 자체를 정치적 상징으로 만들었다. 외제니의 얼굴은 곧 제국의 안정성을 상징하는 시각적 장치가 됐다.
이 과정에서 외제니는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대신 권력이 어떻게 인식돼야 하는지를 설계했다. 이는 오늘날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직접 정책을 발표하지 않지만, 복장과 태도,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외제니는 황제가 부재한 시기 섭정으로 국정을 맡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외지인 황후가 정치의 중심에 설 경우 반감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전략은 언제나 ‘전면이 아닌 상징’에 있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패배로 제국이 붕괴되자, 외제니는 망명길에 오른다. 이후 정치적 복권을 시도하지 않았고, 여론을 상대로 자신을 변호하지도 않았다. 제국의 상징이었던 자신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외제니의 말년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권력의 얼굴이었던 인물이 권력의 무대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방식은, 제국 붕괴 이후 그녀가 감당한 또 하나의 정치적 결정이었다.
GDN VIEWPOINT
외제니 드 몽티조는 ‘황후’였기 이전에, 권력이 시각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체계화한 인물이다. 그녀는 영부인 정치의 원형을 19세기에 이미 완성했다. 말하지 않아도 설득하고, 나서지 않아도 지배하는 권력. 오늘날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 정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미 한 세기 반 전 외제니가 그 공식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외제니는 프랑스의 마지막 황후였다. 동시에, 현대 정치가 ‘보여지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 첫 출발점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