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대한민국이 늙어 버렸다. 나도 늙었다. 대한민국의 60대 이상이 30%를 넘어서고 있단다.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도 무너지고, AI로 인해 고급 인력도 점점 일이 없어지고 있다. 이제는 명문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못 하고 있다. 그러니 학벌 사회가 무너지고, 전문 직종도 살얼음을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기득권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 빼먹으면서, 돈이 돈을 벌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지자체장 후보들과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허풍쟁이가 되어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민초들을 속이고 있다. 그들의 레파토리는 하나같이 비슷하다. 전철을 놓아 준다. 공단을 끌어온다. 세계 제일의 관광지를 만든다 등등...할 수 있는 무지개 같은 말을 모두 동원한다. 그렇게 고약한 사람들이 사회정의를 무너뜨리고 있고, 속임수와 사기꾼들이 앞장서서 세상을 바꿀 듯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갈 곳도, 일할 곳도 없다. 그러니 「꿈 포」 시대의 젊은이들이 꽃도 피기 전에 시들어버리고 있다. 혈기 왕성해야 할 젊은이들이 갈 곳도, 기댈 곳도, 희망도 없어 늙어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다. 물론 조기 퇴직자들도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한국의 외형은 날이 갈수록 화려하다. 여행자들의 눈에, 분명 한국은 지상천국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으로 희망의 회로를 돌린다고 해도, 도무지 해결 되지 않을 듯 싶다. 왜냐하면 삶의 전 분야에 걸쳐서 노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나이는 70대인데 멀쩡한 청년 같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은 늙어가고 있다. 일부 2030 세대들의 몸부림과 함성이 있기는 해도, 4050은 여전히 몸을 사리고 있다. 이러한 위급 상황에 한국을 청춘으로 돌려놓을 지도자는 어디 있는 걸까?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일자리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을 청춘으로 만들 지도자는 없을까? 집단 최면에 걸린, 이 나라를 깨워 다시 청춘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사무엘 울만(Samuel Ulman, 1840~1924)의 <청춘>이라는 시가 떠 오른다. 그는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 태어났지만, 미국 앨라배마주의 버밍햄에서 자라고, 그곳에 평생 일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나이 56세 때,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28년 동안 혼자 살았다. 그리고 그는 말년에 청력과 시력이 약해져서 70대에 접어든 울만은 사색과 일에 전념하면서 시(詩)를 썼다. 그의 나이 80세 때 <기념 시집>을 냈다. 80년 세월의 정상에서 그의 첫 번 시가 바로 「청춘(Youth)」이었다. 울만이 이 시를 쓴 것은, 78세 때였다. 그런데 울만은 평생 시인(詩人)으로 살아온 것도 아니고, 평생 직장인 즉 철물회사, 직물회사, 식료품점, 농산물 판매, 은행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자였기에, 그가 80세에 낸 시집에 미국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인천 상륙 작전의 영웅인 맥아더 장군은 이 울만의 시를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는 1945년 9월 제 二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 동경으로 왔다. 맥아더 장군은 그의 사무실 벽 한쪽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그리고 다른 쪽에는 아브라함 링컨의 초상화를 걸어 놓았다. 그 가운데는 「언제나 젊음에 머무는 방법」이라는 시(詩)를 걸어 놓았다. 그것이 바로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였다. 맥아더 장군은 1951년 4월 미국 상원의원 합동회의 고별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이 연설이 끝난 후 모든 의원들은, ‘마치 우리가 지금 신을 보는 것 같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에 터져 나왔다. 맥아더 장군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울만의 시(詩)를 인용하면서 「청춘은 절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라는 신념으로, 75세 때 ‘아직도 젊다’라는 연설을 했었다.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모두 기록 못 하지만 몇 줄 적어 본다.
「청춘이란 삶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그것은 마음가짐(상태)이라네.
장미 빛 볼과 입술도 아니며, 유연한 무릎도 아니라,
그것은 강인한 의지, 탁월한 상상력, 왕성한 감성을 말함이니,
그것은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오르는 청신함이라네.
청춘은 소심함을 뛰어넘는 용기요,
안락함을 초월하는 강인한 모험심을 뜻한다네.
때로 이것은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에게 더 있다네...
예순 살이든, 열여섯 살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에 대한 동경과 어린이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그리고 삶의 놀이를 즐기는 흥겨움이 있다네...
그대와 나의 가슴 속 깊은 속에
무선 통신국이 있나니,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위안, 용기, 능력을 받기만 하면,
그대는 청춘이라네...」
울만의 시(詩)를 다 여기서 말할 수 없지만, ‘이마의 주름살보다 영혼의 주름살이 바로 늙음’이라 생각된다. 나는 아직도 가슴에 열정이 있다. 매일 뭐라도 긁적거리고, 뭐라도 읽으며 새해를 걸어가련다. 그것이 청춘이 아닐까!
다시 한국을 젊게, 다시 한국교회를 젊게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