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교수는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으로 재직하며 지방자치 일선에서 정책을 입안·조정하고 예산·조례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온 실무형 전문가이다. 또한 국회의정연수원 등에서 지방의회 의원과 의회 직원을 대상으로 행정사무감사, 예산·결산 심사, 조례 입법 및 심사, 정책분석 역량 강화 등을 강의하며 현장 중심의 의정 역량 향상에 힘써 왔다.
이번 칼럼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확산되는 전 주민 현금성 지원의 구조적 위험을 짚고, 재정민주주의와 책임정치의 관점에서 지방의회와 유권자가 점검해야 할 기준을 제시한다.
지방선거 앞두고 번지는 ‘현금 살포’ 경쟁
전북 남원시가 모든 주민에게 1인당 20만원의 민생지원금을 선불카드로 지급하기로 하면서 총 152억원 안팎의 예산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정읍시는 30만원, 임실군은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고, 충북 보은군은 1인당 60만원, 영동군·괴산군은 50만원, 단양군은 20만원을 지원하는 방침을 세웠다. 경북 군위군도 군민 1인당 54만원 지급을 결정했으며, 이미 지난해 말 여러 기초자치단체가 각종 명목으로 현금성 지원을 실시한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민생 회복’과 ‘지역경제 활성화’가 내세워지지만, 지방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두고 비슷한 형태의 현금성 지원이 잇따라 발표되는 현상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아 자체 세입으로 기본 살림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지자체들까지 경쟁적으로 지원금에 나서는 모습은, 포퓰리즘적 선심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재정 ‘적자 체질’ 지자체의 위험한 현금 정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지방세와 세외수입으로 자체 재원을 얼마나 충당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에 가까울수록 재정운영 자립능력이 높다는 뜻이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의회 재정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243개 지자체 중 당초예산 기준 재정자립도가 한 자릿수인 지역은 45개(18.5%)에 이르며,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도 104개(42.8%)에 달한다는 분석이 제시되어 있다. 이런 구조에서 많은 지자체가 사실상 중앙정부 이전재원과 타 지역 납세자가 부담한 세금에 의존해 살림을 꾸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재정 취약 지자체들이 선거를 앞두고 수십만 원대의 현금성 지원금을 전 주민에게 일괄 살포하는 것은, 기업에 비유하면 이미 부도 위기에 있는 회사가 은행 대출과 타인의 투자금을 끌어다 단기 선심성 이벤트에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주민들은 ‘용돈’처럼 느낄 수 있지만, 그 재원은 결국 다른 필수 복지, 교육, 생활 SOC,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에서 빠져나간 돈이며, 빚과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과 국가 재정에 남는다.
‘공짜 바이러스’와 도덕적 해이의 확산
일부 시장·군수가 선심성 현금 살포에 나서면 인근 지역도 압박을 받는다. 어느 군이 “1인당 60만원을 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옆 군의 주민들은 곧바로 “왜 우리는 안 주느냐”고 민원을 쏟아낸다. 이른바 ‘공짜 바이러스’가 인접 지자체로 번지면서, 재정 상태와 장기 전략은 뒷전으로 밀리고 “우리도 똑같이, 아니면 그 이상”이라는 눈치 경쟁만 남는다.
문제는 이러한 현금 살포가 주민에게 ‘세금은 곧 현금으로 돌려받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정치인에게는 ‘선거를 앞두고 돈을 풀어도 된다’는 위험한 학습 효과를 남긴다는 점이다. 선거 한두 번의 득표를 위해 지자체 재정 건전성과 복지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책임정치와 재정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중앙정부 견제 장치 약화와 2,000가지 현금 복지
돌이켜 보면, 2017년 문재인 정부 시기, 지자체의 신규 복지사업에 대해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 수 있는 근거 조항이 폐지되면서, 지자체 복지 재량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 이후 지자체가 시행하는 각종 현금성 복지 사업의 종류가 2,000여 가지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초등학생에게 월 2만원씩 지급하는 이른바 ‘용돈 수당’과 같은 정책까지 등장하며, 복지의 보편성과 형평성,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었다.
물론 자치분권 강화, 지역 맞춤형 복지 설계라는 측면에서 지자체 재량권 확대의 긍정적인 면도 분명하다. 그러나 재정능력과 정책 설계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지자체가 중앙의 견제 장치가 약화된 환경에서 선거를 앞두고 각종 지원금을 남발할 경우, 결국 그 부담은 동일한 국민 세금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고 복지 간 우선순위 충돌과 사각지대 확대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크다.
교육청 사례가 보여주는 ‘정치적 우선순위’
최근 인천시교육청과 광주시교육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교사 명예퇴직 신청을 상당수 반려해 ‘명퇴 대란’이 벌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천교육청은 명예퇴직 수당 예산을 재작년 574억원에서 지난해 224억원, 올해 125억원 수준으로 크게 줄였고, 광주교육청도 명퇴 수당 예산을 재작년 143억원에서 지난해 131억원, 올해 27억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그런데 두 교육청은 동시에 교육감 공약 사업에는 상당한 예산을 투입해 왔다. 인천교육청은 초6·중2·고2 학생의 현장체험학습비 지원에 연간 240억원, 모든 초등학교 1학년에게 입학 준비금 20만원을 지급하는 사업에도 연간 40억 원대 예산을 편성했고, 광주교육청은 중·고교생 1인당 60만~100만원 바우처를 지급하는 사업에 2024년 약 370억원, 2025년 470억원 안팎의 예산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교육재정의 한정된 파이를 어디에 우선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장기적인 인력 구조 개선과 학교 현장 안정보다 단기적으로 가시성이 높은 ‘현금·바우처’ 사업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둔 결정으로 볼 여지가 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라는 정치 일정이 예산 배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지방선거와 현금성 포퓰리즘의 구조적 연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읽힌다.
‘현금 살포’ 대신 구조적 민생 대책으로
진정한 민생 대책은 단발성 현금 살포가 아니라, 취약계층을 두텁게 보호하고 지역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구조적 정책에서 나와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중앙정부와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국비 비율 조정·특별교부세 및 각종 보조금의 합리적 배분·재정조정제도 개선 등을 통해 필수 복지와 생활 SOC, 지역 산업 재편과 연계된 지속 가능한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각 지자체가 할 일은 “우리도 돈 풀겠다”는 경쟁이 아니라 지역의 재정 상태와 인구 구조, 산업 구조를 냉정히 분석하고, 최소 5년·10년 단위의 재정운용 계획 속에서 민생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현금성 지원이 필요하다면, 상시적 제도로 설계하되 대상과 기준, 재원 조달 원칙을 명확히 하고, 선거 일정과 분리된 시점에 심사·결정하는 장치를 두어야 한다.
지방의회와 주민이 막아야 할 ‘선거용 현금’
현금을 뿌리는 사람은 선거를 치르는 시장·군수·교육감이지만, 이를 견제하고 막을 힘은 지방의회와 주민에게 있다. 지방의회는 예산심의·결산검사 과정에서 전 주민 현금 지급, 과도한 바우처 사업 등 선거 직전 편성된 예산의 필요성과 효과,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의회 스스로 선거용 예산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예산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속 가능하고, 더 취약한 영역을 침식하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주민 역시 “얼마를 주느냐”가 아니라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를 묻는 유권자로 거듭나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후보를 평가할 때, 정당이나 인지도보다 예산 우선순위와 재정운용 철학, 현금 살포 대신 구조적 민생대책을 제시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현금 포퓰리즘의 유혹을 끊을 수 있다. 선거 전 ‘용돈’에 마음이 흔들리면, 선거 후 수년간의 재정 부담과 기회비용을 결국 자신과 다음 세대가 떠안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금 차단’에 대한 합의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지금, 한국 사회는 분명한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전 주민 현금 살포를 하는 것은 지방자치와 재정을 망치는 위험한 관행이며, 다음 세대에 대한 도덕적 배신”이라는 최소한의 공감대부터 세워야 한다. 중앙정부는 선거 직전 현금성 사업에 대한 정보 공개와 사전·사후 평가를 의무화하고, 필요하다면 특정 시점 이후 신규 현금성 사업에 대해 보다 엄격한 절차적 통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는 ‘내 고장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율성과 함께, ‘남의 세금으로 내 정치하지 않는다’는 책임성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지금이야말로, 현금 살포의 유혹을 끊고 재정민주주의의 원칙을 세우는 분수령이 되어야 한다. 선거용 현금은 단호히 차단하고, 지방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구조적 민생대책에 지혜를 모으는 것이 진정한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