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진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심리학의 임상 현장과 사건의 뒤안길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종종 가공되지 않은 원석처럼 날카롭고 거칠다.
사실이 밝혀진 직후 찾아오는 공허함과 혼란, 이른바 ‘정의 이후의 공백’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심리적 부채다.

‘2차 외상’과 진실의 역설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 하나가 ‘배신 트라우마(Betrayal Trauma)’다.
믿었던 사람이나 조직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파헤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스트레스가 된다.
진실이 공개되는 순간,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객관적 지표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과 무분별한 해석은 피해자의 자아를 다시 한번 무너뜨리는 ‘재외상화(Retraumatization)’로 작동한다.
더팩트 탐정사무소에서 만난 많은 의뢰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반응 역시, 진실 이후의 안도감이 아니라 깊은 고통이었다. 사실(Fact)은 드러났지만 마음(Mind)은 보호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진실은 치료제가 아니라 독이 된다.
‘알 권리’의 이면, 회복을 위한 공간
사회적 알 권리는 공공의 정의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에게는 그보다 먼저 보호받아야 할 ‘심리적 경계(Psychological Boundary)’가 존재한다.
모든 진실이 여과 없이 노출될 때, 피해자의 회복 탄력성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진정한 정의는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규명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사건이 한 사람의 내면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를 함께 헤아리는 인지적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법적 종결과 심리적 미결, ‘미완성 효과’의 덫
법과 제도는 판결문이라는 마침표를 찍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쉽게 닫히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즉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계속 집착하게 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사건은 종결되었으나 삶의 균열이 그대로 방치될 때, 피해자는 점점 사회적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 제도가 채우지 못한 이 심리적 공백은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회복적 정의로 나아가기 위해
이제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관점에서 법적 절차와 심리적 치유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묻는 단계에서 나아가, “그 진실을 안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진실 이후의 삶까지 책임지는 사회, 그것이 성숙한 정의의 모습일 것이다.
맺으며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진실보다 더 무거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사실은 문서로 정리되지만, 마음은 그렇게 쉽게 접히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사건이 끝난 뒤에도 밤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혼자 버티고 있다.
정의는 누군가의 고통을 증명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 고통을 안고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데서 비로소 완성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일, 그리고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주는 일은 거창하지 않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진실 이후의 시간을 홀로 견디지 않아도 되는 사회,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공동체. 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의의 모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