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8년 주조된 만국진량의 종(万国津梁の鐘)은 류큐 왕국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이 종은 단순한 불교 의례용 범종이 아니라,류큐가 동아시아 해상 세계에서 수행하고자 했던 역할과 비전을 선언한 정치적 문서에 가까운 유물이다.
이 종은 제1차 쇼씨 왕조 제6대 국왕 쇼태구왕(尚泰久王)의 명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류큐는 1453년 시로·푸리의 난 이후 왕권의 권위가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슈리성은 전소되었고,왕실의 상징성과 통치 정당성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쇼태구왕은 이러한 위기를 불교 진흥과 대외 메시지를 결합한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만국진량의 종은 이러한 국가 재건 전략의 핵심 결과물이다. 종의 명문은 일본 출신 선승 계은안잠(渓隠安潜)에 의해 한문으로 찬술되었으며,류큐가 위치한 지정학적 환경과 외교 노선을 압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명문은 류큐를 남해의 승지로 규정하고,조선의 우수함을 모으며,명나라와 보조를 맞추고,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로 묘사한다.
특히 “배를 만국의 가교로 삼아 무역으로 번영한다”는 구절은 류큐의 국가 정체성을 집약한다. 류큐는 스스로를 패권 국가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바다 위에서 문물과 가치를 연결하는 중개자,즉 만국을 잇는 다리로 정의했다. 이는 군사력보다 교역과 외교를 통해 생존과 번영을 도모한 해양 국가의 현실적 선택이었다.
이 종은 대교역 시대라 불리는 14세기부터 16세기 류큐 번영기의 정신적 선언문이기도 하다. 중국,일본,조선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샴(태국),자와(인도네시아),말라카와 연결된 해상 네트워크 속에서 류큐는 상품뿐 아니라 문화와 기술,의례를 교환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에 이르러 만국진량의 종은 오키나와현립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슈리성 정전에는 복제품이 걸려 있다. 2019년 화재로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었지만,그 상징성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이 종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오키나와가 오늘날까지 이어가는 평화와 교류의 기억 그 자체이다.
만국진량의 종은 류큐 왕국이 해양 교역과 외교를 통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물이다.
만국진량의 종은 금속으로 만든 범종이 아니라,바다 위에서 국가를 유지한 지혜의 기록이다. 류큐는 이 종을 통해 힘이 아닌 연결로 존재한 국가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오늘날 이 유물은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무엇으로 존속하는가,그리고 바다는 무엇을 이어주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