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2문
Q. 12. What special act of providence did God exercise toward man in the estate wherein he was created? A. When God had created man, he entered into a covenant of life with him, upon condition of perfect obedience; forbidding him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upon the pain of death.
문 12.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지위에서 사람에 대하여 베푸신 특별한 섭리의 행위는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그와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죽음의 고통으로써 금하셨습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갈 3:1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나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말하는 '사회계약'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종식하거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 일부를 양도하는 생존의 수단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체결된 계약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언약(Covenant of Life)'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2문은 창조주가 피조물을 단순히 관리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대등한 인격적 계약의 당사자로 대우하셨음을 보여준다. 이는 신이 인간에게 베푸신 '특별한 섭리'의 행위이다. 절대자가 피조물과 계약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낮아짐이자 배려다. 마치 거대 기업의 회장이 갓 입사한 신입 사원에게 "함께 이 회사를 경영해보자"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이 계약의 핵심 조건은 '완전한 순종'이다. 현대인들에게 '순종'이라는 단어는 굴종이나 자유의 억압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신학적 맥락에서 이 순종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마땅한 질서를 인정하는 인격적 신뢰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풍요를 허락하셨지만,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금하셨다. 이것은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족쇄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도록 돕는 안전장치였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한계(Limit)'는 인간을 억압하는 벽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실존을 규정하고 주체성을 확립하게 만드는 지지대다. 경계선이 없는 자유는 혼돈일 뿐이지만, 명확한 한계 안에서의 자유는 창조적 권능을 발휘한다.

선악과라는 금기는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신이 인간을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만드셨다면 계약이나 명령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의지를 사용하여 스스로 창조주를 사랑하고 따르기로 선택하기를 원하셨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진정한 사랑은 강요된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에서 나온다. 선악과 앞에 서 있는 아담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신의 명령에 '예'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고귀한 인격체였다. 따라서 이 금지 명령은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함정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시는 신의 존중이었다.
이 계약에는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벌칙이 포함되어 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는 경고는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경제학적으로 가치는 희소성과 대가에 의해 결정된다. 영원한 생명이 그저 당연한 공기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의 관계라는 신뢰를 담보로 유지되는 것임을 명시함으로써 생명의 무게를 체감하게 하신 것이다. 이 계약의 본질은 죽음의 위협이 아니라 '생명의 약속'에 있다. 순종을 통해 영원한 복락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두신 것이다.
결국 제12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우리 삶이 우연한 발생이 아니라 정교한 '관계적 설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신과 맺은 계약의 파트너로 부름받았다.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서 신뢰(Trust)가 가장 강력한 자본이듯, 신과 인간 사이에서도 신뢰는 생명을 지속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우리가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생명의 계약은 파기되지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창조주의 질서에 순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풍요를 누리게 된다. 에덴의 언약은 먼 과거의 신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어떤 가치와 신뢰를 바탕으로 삶을 경영해야 할지를 묻는 실존적 질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금기'는 사실 인간을 향한 가장 큰 '자유'의 선물이다. 한계가 없는 존재는 방황하지만, 한계를 아는 존재는 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악과라는 경계선을 존중할 때, 비로소 에덴의 모든 풍요가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된다는 역설을 기억해야 한다. 신이 제시한 계약 조건은 우리를 속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파트너로 초대하기 위한 정중한 초대장이었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