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연재칼럼 8화] 검색으로는 닿을 수 없는 이불 속 ‘보물지도’, AI의 정답보다 기다려지는, ‘조바심 닮은 즐거움’

AI가 대신 써주는 시대, 아이의 ‘사고력’을 지키는 유일한 골든타임

‘속독’과 ‘가성비 독서’의 배신… 왜 위대한 상상은 ‘느림’에서 나오는가

검색으로는 닿을 수 없는 미래 역량,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몰입’의 비밀

 

이제는 학교 미술 시간이나 작문 시간 풍경조차 낯설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붓을 들고 고민하거나 원고지를 구기며 머리를 싸매는 대신, 인공지능(AI)에게 몇 마디 명령어를 입력해 순식간에 그림과 글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정의 지루함은 생략되고 매끈한 결과물만 남는 이 편리함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 고민하고 끄적이는 시간은 어느새 ‘낭비’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세태를 예견이라도 하듯, 이미 수년 전부터 서점가나 유튜브를 보면 기이한 현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조차 ‘시간 대비 고효율’을 따지는 기술이라는 듯 자칭 유명 강사라는 이들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독서법을 교묘히 재분류해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내놓고, 사람들은 거기에 몰려들어 ‘남들보다 빨리 읽고 기억하는 비법’을 배우려 애를 쓰는 일들이 생겨났지요.

 

<이불 속 보물지도> by AI Artist BookMnagition 책마법사 = The Imaginary Pocus

 

독서와 글쓰기에 들이는 시간은 본래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 결코 계산적인 효율로 따질 수 없는 영역입니다. 사람마다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글의 온도 또한 저마다의 생김새를 따라가기 마련인데, 세상은 이것마저 규격화하여 빨리 성과를 내라고 재촉합니다. 어른들이야 늙기 전에 하나라도 더 이루고 싶은 조급함 때문이라 쳐도, 대체 왜 아이들에게까지 기계와 경쟁하듯 이 숨 막히는 속도를 강요하는 것일까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거의 모든 대단한 성취의 첫인상은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제 아이가 어렸던 20여 년 전,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겠다며 어른들이 만든 것이 ‘독서토론’ 수업이었습니다. 취지는 훌륭했습니다. 책을 읽고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작 저와 아이들에게 그 시간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이 정해준 책, 입시나 시험을 위해 읽어야만 하는 책들은 아이들이 애초에 읽고 싶었던 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효율적인 신기한 속도’가 붙는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고, 작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틈을 누리며, 친구들에게 “이 책 진짜 재밌어! 너도 한 번 읽어봐!”라고 자랑스레 권할 때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의 눈빛은 값비싼 장난감을 손에 쥐었을 때보다 더 당당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본인의 목소리로 외치는 경험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자부심이자 꽉 찬 행복임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렘이 더 큰 법입니다. 공부나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자랑을 듣고 귀가 번쩍 뜨이어 제목을 검색하고, 주문한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조바심 닮은 즐거움’. 이 기다림과 동경의 시간은 AI 시대의 관점에선 가장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이의 내면에 거대한 상상의 활주로를 닦는 대단한 시간인 셈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밤이 찾아 옵니다. 자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겨, 부모님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작은 손전등을 켜고 찾아 헤매는, 신비한 보물지도 같은 책 한 권이 있다면 이불 속 작은 우주에서는 그 어떤 슈퍼컴퓨터도 흉내 낼 수 없는 상상력이 갖는 ‘진짜 속도’가 폭발합니다.

 

책장을 넘겨 시간을 날아가는 상상 세계에서는, 아이들의 생각들이 순식간에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줄 서있던 활자들은 영화처럼 살아나 움직이지요. 뜬금없는 생각들이 창의적으로 융합되고 펼쳐지는 시간엔 마음껏 꿈에 부풀고 거침없이 질주하며 바람을 가릅니다. 기계적인 연산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오직 몰입만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기쁨입니다.

 

지도를 쥔 탐험가가 험난한 길을 즐기듯 아이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만지작거리며 곧 끝날 여정이 아쉬워, 일부러 며칠씩 미루어 조금씩 읽는 ‘소소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게으름 속에서 아이들의 상상은 역설적으로 더욱 빠르게, 더욱 멀리 뻗어나갑니다. 우연히 같은 책을 본 친구를 만나 감동을 나누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책 속의 한 장면 그림과 여러 번 밑줄 그었던 명문에 감탄하는 그 순수한 시간에 온전히 물들도록 말입니다.

 

그런 밤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아이들은 효율의 속도보다 더 빛나는 자신만의 가장 가치 있는 길을 찾아 돛을 날리며 나아갈 겁니다. 그리고 나만의 세상을 언제든 다시 창조할 용기를 가지고 꼭 필요한 때에, 탄탄하게 훈련된 상상의 힘을 ‘전설의 검’처럼 단번에 뽑아 들 것입니다.
 

 

 

 

 

 

 

 

 

 

 

 

 

 

 

 

 

 

 

 

 

작성 2026.02.10 02:28 수정 2026.02.10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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