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서 발견된 돼지 그림은 약 4만 5,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어, 현재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구상화로 인정받고 있다. 먹을 것도 부족하고 맹수의 위협이 일상이던 그 시대의 그 작은 그림 하나가, 지금 이 시대에 거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0.8초 만에 그림을 완성하는 2026년, 인류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 대회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한 작품이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그림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출품자는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미드저니(Midjourney)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고, 심사위원들은 그것이 인간의 작품인 줄 알고 최고점을 주었다. 이 사건은 예술계를 발칵 뒤집었다. 화가들은 생계를 위협받는다고 분노했고, 철학자들은 창조의 정의가 무너졌다고 경고했으며, 기술 낙관론자들은 예술의 민주화가 시작되었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그 소란 너머에 있었다. AI가 그린 그림이 인간을 감동시켰다면, 감동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감동이 AI로부터 왔다면, 예술에서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세계 최대 스톡 이미지 플랫폼 게티이미지(Getty Images)는 2023년 AI 생성 이미지의 무단 학습을 이유로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저작권청은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잇따라 거부했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 단체들은 AI 학습에 자신들의 작품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다며 집단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수치로 드러난다. 2023년 기준 글로벌 AI 아트 시장은 약 3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2030년까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전통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래픽 디자이너의 의뢰 건수는 같은 기간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예술 시장의 지각변동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소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술의 역사는 언제나 기술의 도전과 함께였다. 19세기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화가들은 회화의 종말을 두려워했다. 실제로 초상화 화가들은 일감을 잃었다. 그러나 인간은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을 찾아 인상주의, 표현주의, 추상화로 나아갔다. 사진이 회화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회화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영화가 등장했을 때 연극은 사라질 것이라 했다. 음악 녹음 기술이 발전했을 때 공연 예술은 끝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연극도, 공연도 살아남았다. 기술이 복제할 수 없는 것, 그 자리에 예술이 남았다. AI 시대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술이 복제할 수 없는 예술의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4만5천 년 전 동굴로 돌아가야 한다. 그 손바닥 도장을 찍은 인간은 결과물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행위를 원했다. 자신이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욕망이 예술을 낳았다. 수만 년이 흘러 예술은 신전 벽화가 되었고, 교향곡이 되었고, 대성당이 되었고, 영화가 되었다. 형식은 바뀌었지만 그 손짓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 너머를 향해 손을 뻗는 행위, 그것이 예술이다. AI는 인간의 과거 손짓을 학습하여 새로운 손짓을 흉내 낸다. 그러나 AI에게는 한계가 없다. 한계 너머를 향한 절박함이 없다.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고, 신을 향한 갈망이 없다. 그것이 AI의 그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인간의 작품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시대정신을 읽는 눈이 필요한 때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앞지르는 이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지혜다. 더위즈덤은 4만5천 년 전 동굴 벽에서 AI 생성 이미지 논쟁까지, 인류가 예술을 통해 무엇을 말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종교가 예술로 신을 불렀던 방식, 수학이 예술로 우주를 표현했던 방식, 한민족이 예술로 천지의 원리를 새겼던 방식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AI도,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는 예술의 본질을 독자와 함께 발굴할 것이다. 지각변동의 시대일수록 뿌리를 알아야 흔들리지 않는다. 예술의 뿌리를 아는 것이 이 시대를 읽는 가장 깊은 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