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성경신학 관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성경이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근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며 성도들이 지켜야 할 규범입니다. 그 규범 중에 예배와 관련된 내용도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예배가 우리가 따를 모범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바른 예배만 아니라 거짓 예배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거짓 예배, 틀린 예배, 엉터리 예배는 걸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예배는 오직 바른 예배뿐입니다.
제가 칼럼 연재를 시작했을 때, 그 첫번째 칼럼에서 "주의 날"을 말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어떤 이는 주일과 안식일을 혼동합니다. 구약시대 안식일이 신약시대 주일로 변천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주일 개념을 은연중에 안식일 의미를 차용해서 접근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도 주일과 안식일은 다른 날입니다. 쉽게 말해 안식일은 토요일, 주일은 일요일입니다. 토요일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인 반면 일요일은 첫날입니다. 그러니 주일과 안식일이 같다고 말함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믿음인 양 여겼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예배와 관련된 안식일, 그 시작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울러 그 변천사도 역시 검토해봅니다. 성경에서 안식일이 예배 규범으로 처음 등장한 장면이 어디입니까? 창세기 족장시대에 안식일 개념이 있기는 했습니까? 안식일은 아무래도 이스라엘 등장과 맞물린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출애굽기에 안식일 개념이 처음 등장합니다.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가 정착합니다. 그렇게 430년간 이집트에서 생활하며 민족 단위로 급성장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이끌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과 모세를 어떻게 따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언제 어디에서 부르셨습니까? 그 모세에게 주신 약속과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신학 의미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의미를 되새김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세에게 주신 약속과 사명을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먼저 모세에게 주신 약속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해방이고 둘째는 가나안 땅 정착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그 상황을 극복할 유일한 방편이 탈출입니다. 출애굽기라는 책명 역시 그 탈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출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문제는 가나안 땅 정복이 최종 목적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해방시키시고 가나안 땅을 주셨는가에 최종 목적이 숨겨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모세에게 주신 소명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한 모든 사명을 주셨습니까? 아니면 두 가지 중 하나만 주셨습니까? 모세 생애를 재구성하며 자주 놓치는 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명은 하나뿐입니다. 약속은 둘인데 사명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재구성된 모세 생애를 놓고 모세오경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세를 통해 선포된 안식일 규범은 무엇이겠습니까? 안식일 예배와 연관된 가장 소중한 내용이 십계명 아닙니까? 모세에게 주신 돌비로 잘 알려진 십계명을 보십시오. 열 개로 구성된 계명 중 네 번째가 안식일 규범입니다(출 20:8-11).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니 거룩하게 지킬 방법이 예배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안식일 예배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가 됩니다. 훗날 장로들은 안식일 예배를 지키기 위한 여러 규칙을 정합니다. 이를 전통 혹은 유전이라고 하는데 자그마치 613개나 됩니다. "하라"(do)는 명령 248개와 "하지 마라"(do not)라는 명령 365개로 말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최소 율법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율법은 십계명을 근간으로 합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모든 율법이 근거할 뼈대이며 모체입니다. 자, 그러면 그 십계명을 하나님이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당연한 질문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답하기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엔 이스라엘 정체성과 맞물린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개념상 이스라엘은 두 방향에서 말하곤 합니다. 첫째는 야곱 후손들, 곧 혈통과 연관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과연 혈통에 따른 야곱 후손들만을 뜻합니까? 그렇지 않으다면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습니까?
이처럼 십계명을 풀어가자면 주렁주렁 물어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그 하나가 십계명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입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이 기록된 성경은 무엇인가입니다. 이 질문을 조금 틀어서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십계명은 어디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어디'와 '어디 어디'는 분명 정황상 분위기가 다릅니다. '어디'라면 한곳일 텐데 '어디 어디'라면 한곳 그 이상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성경신학 칼럼이니 질문을 조금 수정해 보았습니다.
요즘은 교회가 웬만하면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 분위기인가 봅니다. 제가 방문한 몇몇 교회는 아예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요즘 젊은 세대가 즐겨 부르는 노래로 대신합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조차도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찬송가 책 뒤편에 수록된 십계명은 당연히 출애굽기 20장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가 출애굽기에만 십계명이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생들조차 그렇게 알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하게 성경을 읽는다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본문이 다름 아닌 신명기 5장입니다. 정리하면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옵니다.
이제 답을 찾았으니 다르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있는 십계명은 내용이 같습니까? 이건 무슨 말입니까? 십계명이 나오는 두 본문, 곧 평행본문을 비교해 보셨습니까? 두 본문을 함께 비교해 보면 그 내용이 조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른 부분이 어디입니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계명 아닙니까? 말 그대로 아주 조금씩 설명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계명은 주문과 설명문으로 구성되었는데 주문은 같고 설명문이 달라졌습니다. 그 달라진 부분을 음미할 수 있다면 성경신학 입문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사족 같은 한마디로 결론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평행본문을 읽다 보면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이 평행본문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강조점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가 네 권인데 그 복음서 모두에 나오는 사건과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십자가 고난과 부활 아니겠습니까? 네 차례나 반복된 내용에서 하나님 강조점이 무엇인지 가늠하십시오.
성경은 곧 하나님 말씀인데 허투루 주셨겠습니까?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면 잊지 말라는 신호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십계명도 출애굽기와 신명기, 두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두 본문을 비교 분석하며 그 차이점을 확인하시길 기대합니다. 그렇게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따른 안식일 적용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