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구리산 사이에서 달려나오는 하나님의 병거”
스가랴의 여덟 번째 환상은 장엄하고도 신비하다.
두 구리산 사이로 네 병거가 나오는데, 이는 단순한 전쟁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에서 파송된 사자들이 역사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그림이다. 구리산은 솔로몬 성전 앞의 야긴과 보아스 기둥을 떠올리게 하며,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문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며, 필요할 때에 당신의 명령을 수행할 하늘 군대를 움직이신다는 메시지다.
말들이 북쪽과 남쪽으로 달려 나아간다. 북방은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앗시리아와 바벨론이 자리하던 곳이고, 그곳을 완전히 제압하여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비록 당시 귀환한 유대인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고 성전 재건은 중단된 상태였지만, 하나님은 눈앞의 현실 너머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 중심에는 ‘싹’이라 불리는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가 있었다.
하나님은 은금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게 하셨다. 이는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제사장과 왕의 사명이 한 분에게 통합될 장차 올 메시야의 그림자다. 그 메시야는 성전을 건축하고, 먼 곳에 있는 자들까지 불러 모아 하나님의 집을 완성하실 것이다. 스가랴와 백성들은 그 모든 의미를 다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순종하며 그 시대의 사명을 감당했다.
이 환상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부르심을 전한다. 우리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시대,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간다. 세상은 여전히 북방의 대적처럼 거칠고 성전 건축은 종종 중단된 듯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병거는 멈추지 않고,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성전을 세우고 계신다. 우리의 역할은 모든 그림을 다 알지 못해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순종을 붙드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지연되고, 때로는 막히는 듯한 사역과 기도 제목들이 있다. 그러나 스가랴의 환상처럼, 하나님은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판과 회복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신다. 우리가 보는 것은 산 사이를 나오는 병거의 일부일 뿐, 그 뒤에는 하늘의 명령과 완전한 계획이 있다.
오늘도 주님 앞에 묻는다.
“주님, 저는 어디로 달려가야 합니까? 저의 병거는 누구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을 기쁘시게 쉬게 하는, 순종의 발걸음을 걸어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