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玄)’이 품은 동아시아의 문화·철학
한국의 전통문화에는 단순한 색 이상의 세계가 숨어 있다. 색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정신이며, 눈에 보이는 빛이자 마음의 상태를 비추는 상징이다. 씨초포스트는 이번 기획에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핵심 색채 개념 가운데 하나인 “현(玄)”에 주목했다. 검정과 붉음의 경계, 깊이와 신비의 문턱에 서 있는 이 글자는 오늘날까지도 철학과 종교, 일상생활의 미감 속에 살아 있다.

‘현(玄)’의 뿌리 — 염색에서 철학으로
‘현’이라는 글자는 고대의 염색 기술에서 태어났다. 식물성 염료에 여러 차례 직물을 담가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염색 횟수에 따라 아주 미묘한 명도 차가 생긴다. 다섯 번 염색하면 검은빛 속에 붉음이 감도는 색 ‘주(緅)’가 되며, 일곱 번 염색하면 완전한 검정 ‘자(缁)’가 된다.
학자 정현(鄭玄)은 이 두 색의 중간, 즉 “여섯 번 염색했을 때 얻어지는 ‘거의 검정에 가까운 붉은빛’”을 ‘현'이라 보았다. 오늘날에는 단순히 ‘검정’으로 이해되지만, 그 안에는 빛과 어둠 사이의 흔적, 시간의 층위가 섬세하게 배어 있다.
‘현’의 본래 글자꼴이 “‘걸어두다(懸)’”와 연결된 점도 흥미롭다. 염색 후 실을 매달아 말리는 모습이 바로 이 두 글자의 시원이다. 매달린 실처럼, ‘현’은 깊음·아득함·신비로움이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고전 속의 ‘현’- 깊이를 상징하는 색
《천자문》의 첫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하늘은 ‘현’, 땅은 ‘황’으로 표현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파란 하늘이 아니라, 밤하늘의 깊고 고요한 검정이 고대인들의 감각 속 하늘색이었다.
《도덕경》은 “현지우현, 중묘지문(玄之又玄, 眾妙之門)”이라고 했다.
‘현’은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열리는 우주의 문턱, 모든 현상이 태어나는 깊은 자궁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현관(玄關)’ 또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행의 경계를 의미한다.
건축에서 ‘현관’이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 공간을 전환하며 마음의 숨을 고르게 하는 자리인 것처럼, 고전 사상 속 ‘현’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잇는 문명적 경계였다.
‘검정(黑)’의 얼굴 — 일상의 그을음에서 상징으로
‘흑(黑)’자는 원래 화로와 불을 본뜬 글자였다. 오래 사용된 부뚜막이 연기에 그을리듯, 검정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색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죄인의 얼굴에 표식을 새기고 검은 물감을 칠하던 “묵형(墨刑)”도 ‘흑’의 또 다른 원형이었다. 검정은 이렇게 신성·평온·일상의 색이면서, 동시에 금기·두려움·심판의 색이기도 했다. 《논어》의 “涅而不缁(검게 물들여도 검게 물들지 않는다)”는 표현은 검정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와 그 위를 뛰어넘는 고결한 윤리성을 동시에 말한다. 흙탕물 속에서도 오히려 더 빛나는 인간의 품성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현(玄)’의 감각을 오늘에 다시 묻다
현대 사회에서 색은 상품의 기호이자 감정의 코드로 읽힌다. 그러나 ‘현’이 지닌 세계는 단순히 검정의 미학만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누적, 층위의 깊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여백을 담은 철학적 색채다. 끝을 알 수 없는 밤하늘의 검정처럼,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별빛처럼, 동아시아의 ‘현’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깊은 사유의 문을 여는 색이다.
호림미술관에서 검은색에 관한 주제로 특별전을 전시하는 중이다. 낙옆이 다 떨어지기 전에 한번 방문해보는 것도 가을을 느끼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마침 호림미술관에서는 ‘검은색’을 탐구하는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낙엽이 모두 지기 전에 한 번 들러 가을의 은은한 침잠과 흑색의 깊이를 함께 체험해보는 것도 올해를 정리하는 아름다운 여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