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이 세계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를 잠깐 멈추게는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저 역시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올해는 마침표를 찍는 대신 쉼표를 더 오래 찍기로 했습니다.”
소설가 박민정은 2025년 한 해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빠르게 소비되는 사건과 반응, 잊혀지는 말들 사이에서 그는 유독 자주 멈춰 섰다고 했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그것이 정말 ‘내 말’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올해는 그 과정이 예상보다 길고 조용했죠.”
박민정은 한국 문학에서 자신만의 서사적 시선을 꾸준히 구축해온 작가다. 특히 전작 『더 신라(The Shilla)』는 아마존(Amazon)을 통해 전 세계에 출판되며, 한국 문학의 경계를 넘어 독자들과 만난 바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익숙한 리얼리즘의 문법을 유연하게 넘어서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궤도 위에서, 그는 당초 올해 말 작업을 마치고 세상에 내놓으려던 신작의 속도를 늦췄다. 2026년 상반기 출간을 확정한 SF 대작 『편백나무 숲』이 바로 그 작품이다.
“원래는 올해 안에 원고를 털고 ‘출근’하듯 세상에 내보낼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공동의 작업 과정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와 서사가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걸 알았죠. 서둘러 맺음말을 쓰기보다는, 텍스트 안에서 조금 더 헤매고 질문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번 신작 『편백나무 숲』은 작가의 전작들과는 결이 다른 거대한 스케일을 예고한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과 류츠신의 『삼체』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 중인 이 작품은, 합천 운석 충돌구라는 실재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극대화했다. 운석 충돌 지점에서 태동한 초지능(ASI)의 존재, 그리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한·중·일의 유력 가문들이 벌이는 세기적 암투와 거대한 음모가 서사의 핵심이다.
집필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박민정은 최근 작업실에서 항상 기베온(Gibeon)에 떨어진 운석으로 만든 시계를 착용한다고 밝혔다. 합천 운석 충돌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 만큼, 집필하는 동안 실제로 시계로부터 ‘우주의 기운’을 받아내겠다는 작가만의 독특하고도 결연한 의식(ritual)인 셈이다.
그는 이번 신작 작업의 지연에 대해서도 ‘멈춤’의 미학으로 설명했다. 워낙 방대한 세계관을 다루는 만큼, 섣부른 완성보다는 밀도 있는 사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 그 시선 자체가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일 수 있어요. 특히 모든 것이 빠르게 흐르는 시대일수록요. 완성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중입니다.”
연말을 맞아 발표한 칼럼에서도 박민정은 ‘멈춤’이라는 감각에 주목했다. “소설가로서 올해는 말보다는 멈춰 있는 장면에 더 오래 머물렀던 해예요. 세상이 너무 빠르다 보니, 잠깐이라도 멈추게 하는 문장이 문학의 역할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소설이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 시간만큼 독자들에게 더 깊은 숨을 내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학이 사회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박민정은 여전히 문학에 ‘작은 정지’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확신하고, 너무 쉽게 말하는 시대에, 멈추고 의심하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2026년의 봄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더디게, 그러나 분명하게 글을 쓴다.
“올해도 몇 편의 멈춤을 썼어요. 내년에 만날 그 문장들이 누군가에게 잠시 숨 쉴 틈이 된다면, 기다림은 그것으로 충분하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한참을 침묵했다. 그 침묵이 마치 그의 소설 같았다.
2026년 상반기, 박민정은 신작 『편백나무 숲』의 출간과 더불어 상하이 출장도 계획하고 있다. 현지 독자들과의 만남은 물론, 아시아 SF문학의 흐름을 가늠해볼 중요한 자리가 될 예정이다. 그는 이번 출장을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러 가는 여정”이라 표현했다. 익숙한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낯선 도시의 공기 속에서, 다시 한 번 멈추고 관찰하며 다음 서사를 위한 숨을 고르려는 것이다. 소설처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움직이는 그의 발걸음은 2026년 봄에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