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이 전쟁이 정확히 100년 동안 이어졌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예상과 다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1337년에 시작돼 1453년에 끝났으며, 실제 기간은 무려 116년에 달한다. 이름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역사 속 장기 분쟁이 얼마나 복잡하고 단절적으로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쟁은 오늘날 'Hundred Years' War로 불린다. 하지만 전쟁 기간 내내 전투가 쉼 없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수차례의 대규모 전투와 장기간의 휴전, 정치적 협상과 재충돌이 반복되며 세대를 넘어 지속된 ‘연속된 분쟁’에 가까웠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이 긴 갈등을 하나로 묶어 상징적으로 ‘백년전쟁’이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의 발단은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였다. 프랑스 왕가의 직계 혈통이 끊기자,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프랑스 왕위의 정당한 계승자라 주장했다. 여기에 플랑드르 지방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관계, 봉건 질서 속 주종 관계의 충돌이 더해지며 갈등은 전면전으로 비화했다.
초기 전쟁 국면에서는 잉글랜드가 우위를 점했다. 장궁(Longbow)을 앞세운 잉글랜드군은 크레시 전투와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스 기사단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중세 전쟁 양상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중기 이후 프랑스는 군사 개혁과 재정 정비를 통해 점차 전력을 회복했고, 잉글랜드 내부의 정치적 혼란은 전세를 뒤집는 요인이 됐다.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인물은 프랑스의 농가 출신 소녀 Joan of Arc였다. 잔 다르크는 1429년 오를레앙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며 국민적 결속과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녀의 등장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프랑스인들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1453년 보르도 함락을 끝으로 전쟁은 마무리됐다. 결과적으로 잉글랜드는 대륙의 대부분 영토를 상실했고, 프랑스는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백년전쟁은 단순한 장기 전쟁이 아니라, 중세 봉건 사회가 붕괴되고 근대 국가 체제가 태동하는 전환점이었다.
이처럼 백년전쟁은 이름과 달리 100년을 훌쩍 넘긴 116년 동안 이어진 역사적 분쟁이다. 전쟁의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의 흐름이다. 숫자 하나로 요약된 이름 뒤에는, 수많은 세대의 삶과 유럽 역사의 방향을 바꾼 긴 시간이 숨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