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思量)에서 유래한 '사랑', 값싼 말로 전락한 비판
동서를 불문하고 인간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감정,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을 뜻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는 그의 작품에서 일반인의 사랑은 사람을 더욱 강해지도록 채찍질하는 것이고. 성자(聖者)의 사랑은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덜어주려는 동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창조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일곱 악마로부터 하나의 신을 창조하려고 한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대는 자신을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만이 경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던 자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나의 눈물과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형제여.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 하고, 그럼으로써 파멸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라고 적었다.
사랑이라는 우리말의 고대어는 “괴다, ᄃᆞᆺ다, 얼우다” 등이라고 한다. 한문으로는 愛(애), 戀(연)이 사랑의 의미를 가진다. 15세기 때의 우리말 문헌에서는 “ᄉᆞ라ᇰ”이라고 적은 것이 많으며, 근대 이후는 “ᄉᆞ”같은 “아래 아”의 음가가 소멸되면서 현재의 “사랑”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런 “사랑”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최초의 향가 해독자인 양주동 박사가 주장한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한자, ”사량(思量)“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기는 학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이씨조선 세조 5년(1459)에 간행된 조선의 불경 언해서인 『월인석보(月印釋譜)』에는 “思ᄂᆞᆫ ᄉᆞ라ᇰᄒᆞᆯ씨라(思는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에는 “如是思惟、澄寂名空、搖動名塵(이같이 생각건데, 맑으며 고요한 것은 이름이 공(空)이요, 요동치는 것은 이름이 티끌이니)라고 적혀있고, 1510년대 최세진(崔世珍)이 쓴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에는 ”動一兩次時、便思量飯喫(한두 번 동(動, 일)하면 곧 밥 먹고 싶어질(思量)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위의 기록들을 볼 때 조선 전기에는 “ᄉᆞ라ᇰ”이 분명 현대의 “사랑(愛)”과 같은 의미로도 쓰였지만 “생각(思)”한다는 뜻으로 더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문과 언해문이 공존했던 중세 한국어 사료(史料)를 보면 언해 부분의 “ᄉᆞ라ᇰ”이 思(생각할 사), 念(생각할 념), 思惟(생각할 유), 思懷(품을 회) 등의 한자와 대응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중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에서는 백화문(白話文: 구어체 중국어)으로 된 원문에 思量(사량)이라는 단어가 나오므로, 한자어 “사량(思量)”과 한글 표기 “ᄉᆞ라ᇰ”이 대응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思量(사량)”의 한자음은 “ᄉᆞ랴ᇰ”으로, “ᄉᆞ라ᇰ”과는 반모음 하나(랴ᇰ과 라ᇰ)만 차이날 뿐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음운이 발음하기 편한 쪽으로 변하여 “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사랑”은 본래 “생각”의 뜻으로 쓰였다가 15세기 중반부터 점차 “애정”의 의미를 겸하게 되었고, 16세기 말에 이르러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애정”의 의미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나라 때 왕중민(王重民)이 쓴 『돈황곡자사집(敦煌曲子詞集)』을 비롯한 한문 서적에서도 “사량(思量)이 님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다”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 사례가 있다.
일각에서는 “사랑”의 어원을 “살다(生) 또는 사르다(燒)”와 연관 짓기도 한다. 그러나 “살다”는 중세 한글 때부터 “살다”였으므로 아래아(ᄉᆞ)로 시작했던 사랑과 모음이 전혀 맞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사르다”는 “ᄉᆞᆯ다”였으므로 모음이 일치하긴 하지만, “불사르다”와 “사랑하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거성(去聲, 긴소리)이었던 “ᄉᆞᆯ다”와 평성(平聲, 짧은소리)이었던 “ᄉᆞ라ᇰ”은 성조(聲調)의 차이도 있다. 이에 반해 한자 사(思)와 량(量)은 둘 다 평성이므로 “ᄉᆞ라ᇰ”의 성조와 부합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타당한 학설로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주장도 있다. 즉 “낭자(娘子)를 그리워한다는 사랑(思娘)”과 “낭군(郎君)을 그리워한다는 사랑(思郞)”이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우리말로 일반화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설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남발되어 “그저 좋아한다”는 의미로까지 전락되어 있는 현실을 되짚어 보기 위해서이다. 청혼할 때 정중히 말하는 “사랑합니다”는 진심을 담은 사랑이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들에게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너무 쉽게, 너무 함부로 남발하는 현실을 볼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값싸게 느껴진다. 사랑은 그렇게 값싼 단어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일생을 살면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보배 중의 보배 같은 말이다. 말(단어)에도 값이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레기 버리듯 아무 곳에나 던질 것이 아니라 좀 더 값지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