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 시도 이후의 아이는 종종 조용해진다. 질문을 던지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묵으로 답한다. 중학교 여학생에게 “지금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 이미 많은 어른 앞에서 설명해야 했고, 평가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흔히 ‘전문 치료’를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변증법적 행동치료, 즉 DBT다. 하지만 많은 일반인은 DBT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지를 잘 알지 못한다.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는 무엇을 하는 치료인가
DBT는 원래 자해와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치료다. 핵심은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룬다. 하나는 “지금의 너는 충분히 이해받아야 한다”는 수용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행동은 바뀔 수 있다”는 변화다. 이 두 입장을 동시에 붙잡는다는 의미에서 ‘변증법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청소년 DBT에서는 주로 네 가지 기술을 다룬다. 강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고통을 견디는 방법,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자살 시도 이후의 위기 국면에서 이 기술들은 실제로 도움이 된다. 충동적인 행동을 멈추고, 감정의 폭발을 낮추며, 다시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돕는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설명하고,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며, 행동을 되돌아본다. 성인에게는 가능한 이 작업이, 14살 아이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이, 14살 청소년의 현실
중3 여학생은 아직 감정과 언어가 완전히 연결되지 않은 시기에 있다. 몸은 빠르게 변하고, 감정은 복잡해지는데, 그것을 설명할 단어는 부족하다. 자살 시도라는 극단적인 경험을 한 이후라면 이 간극은 더 커진다. 아이는 자신의 상태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때 DBT의 질문은 아이에게 ‘치료적 도움’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시험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니?” “그 감정을 숫자로 표현해 볼까?” 이런 질문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가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치료가 앞서가면, 아이는 더 움츠러든다.
놀이치료는 왜 이 지점에서 필요해지는가
놀이치료는 말보다 먼저 작동하는 치료다. 아이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인형을 움직이고, 그림을 그리고, 블록을 쌓는 과정에서 감정과 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선택하고, 바꾸고, 망가뜨리고, 다시 만드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통제감을 회복한다.
자살 시도 이후의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안전한 관계’다. 놀이치료는 평가받지 않는 공간을 제공한다. 여기서는 정답이 없고, 잘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는 다시 사람 앞에서 존재해도 괜찮다는 감각을 얻는다. 이 감각이 만들어진 뒤에야 DBT의 기술은 의미를 갖는다. 놀이치료로 감정의 윤곽이 생기고, 관계가 안정되면,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상태를 말로 옮길 준비를 한다. 그때 DBT는 억지 훈련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된다.
DBT와 놀이치료는 경쟁 관계가 아니다
종종 현장에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DBT와 놀이치료는 역할이 다르다. DBT는 위기를 관리하는 구조이고, 놀이치료는 그 구조가 들어갈 수 있는 바닥을 만든다. 순서의 문제다. 안정화 이후 곧바로 DBT로 들어가기보다, 놀이치료를 통해 관계와 표현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면 치료의 지속성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아이는 도망치지 않고, 치료실에 머문다. 그 다음에 배우는 DBT 기술은 아이의 삶과 연결된다.
아이에게 맞는 언어로 다가가야 한다
DBT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다만 청소년의 마음은 아직 말보다 놀이에 더 가까운 언어를 사용한다. 치료는 아이를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내는 작업이다. 자살 시도 이후의 회복은 단계적이다. 안정화, 놀이를 통한 관계 회복, 그리고 기술 습득. 이 순서를 존중할 때 아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는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아이의 속도에 맞춰 치료를 설계하고 있는가. 보호자와 학교, 상담 현장은 위기 이후 청소년 치료에서 놀이치료를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연결 단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치료의 ‘무엇’보다 ‘언제’를 다시 점검해 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