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금은 안 받습니다. 나가서 주문하세요." 며칠 전 점심, 패스트푸드점에서 70대 어르신이 쭈뼛거리다 쫓겨나듯 매장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키오스크(무인 주문기)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주문을 포기한 것이다.
햄버거 하나 먹으러 왔다가 자존심만 구겨진 채 돌아선 그 뒷모습이 내내 눈에 밟혔다. 최근 일부 매장에서는 아예 '60세 이상 출입 금지'를 내건 '노 시니어 존'까지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던 첨단 사회의 모습인가.
35년 경찰 생활 동안 나는 수많은 소외된 이들을 목격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소외'는 과거의 물리적 폭력과는 또 다른 형태의 '정서적 폭력'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디지털 정보 격차로 인한 노인 인권 침해'를 우려하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현장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60세 이상 노인 10명 중 6명이 디지털 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통계는 우리 부모님들이 겪는 매일의 공포를 증명한다.
디지털 기기 조작의 어려움은 단순한 불편함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노인들에게 "나는 이제 이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인가"라는 깊은 자괴감을 심어준다. 은행 업무부터 기차표 예매, 식당 주문까지 모든 것이 기계화된 세상에서 그들은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뒤에 선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도움조차 청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그 순간, 그들의 '존엄'은 무너져 내린다.
정부는 '디지털 포용 2025' 정책을 내세우며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인식 변화 없이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약자를 배제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모든 매장에 '현금 결제 카운터'를 의무화하거나, 디지털 약자를 위한 '느린 창구'를 마련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노인들이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는 '헬프데스크' 운영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지금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노인의 모습은, 머지않은 미래의 우리 자화상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기다려주는 여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만드는 배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오늘 점심, 기계 앞에 선 어르신을 본다면 대신 버튼을 눌러드리는 작은 용기를 내보자.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시작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