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저 기분 나빠요. 아동학대로 신고할 거예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를 깨우던 교사에게 돌아온 대답이다. 농담 같은 이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 교실의 섬뜩한 현실이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싸우는 학생을 말리다 팔을 잡았다는 이유로 교사가 '신체적 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훈육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개입조차 '폭력'으로 매도되는 현실 앞에서, 교사들은 자괴감을 넘어 공포를 느낀다.
35년 경찰 생활 동안 수많은 고소, 고발 사건을 수사했지만, 최근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아동학대 신고'는 도를 넘었다. 교사노조연맹 보고서에 따르면, 교사 10명 중 8명이 신고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우리 아이가 선생님 표정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주관적 주장 하나만으로 교사를 수사기관의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실제 현장에서 만난 김 교사의 사례는 더욱 처참하다.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를 제지했다가 학부모로부터 밤낮없는 폭언 문자에 시달려야 했다. "내 아이 기 죽이지 마라", "교육청에 찌르겠다"는 협박은 일상이 되었다. 이것은 정당한 교육 상담이 아니라 명백한 '스토킹'이자 '업무 방해'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청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교사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인내와 사과만을 강요한다.
문제의 핵심은 '정서적 학대'라는 모호한 법적 잣대가 교사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의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보니, 정당한 생활지도조차 걸면 걸리는 '코에 걸면 코걸이' 식 범죄가 된다. 아이의 잘못을 단호하게 지적하지 못하고 아이 눈치만 보는 교실에서, 과연 아이들은 옳고 그름의 경계를 배울 수 있을까.
이처럼 무너진 교권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이다.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가 무서워 문제 행동을 방관하게 되면, 수업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은 침해받는다.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교무실에 퍼질 때,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 아닌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해버린다. 훈육의 부재는 '자유'가 아니라 무책임한 '방임'이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실질적인 '방패'가 필요하다. 모호한 '정서적 학대'의 법적 기준을 구체화하고,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교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의무이자 사랑이다. 그 사랑을 '학대'라고 낙인찍는 순간, 대한민국 교육은 멈춘다.
무엇보다 가정에서의 인성 교육 회복이 절실하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는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 자리에 '괴물'이 자라나고 있다. 부모가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데, 아이가 선생님을 존중할 리 만무하다. 교사가 당당해야 아이도 바르게 큰다. 이것은 교사 한 명의 인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린 생존 문제다. 교사가 교사답게 설 수 있는 교실을 되찾아야 한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