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력은 충분한데, 왜 시장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
“경력은 충분한데 왜 계속 안 될까요?”
은퇴 공무원 재취업 상담 자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수십 년간 국가 예산을 다뤘고, 조직을 관리했고, 정책을 설계했던 경험이 있다. 명함에서 직함만 사라졌을 뿐, 자신이 가진 ‘실력’은 여전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재취업 실패는 늘 외부 탓으로 설명된다. 시장이 나쁘다거나, 나이가 문제라거나, 민간이 공공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은 훨씬 단순하고, 동시에 잔인하다. 은퇴 공무원이 재취업에서 가장 먼저 착각하는 전제는 이것이다. “내 경력은 어디서든 통용될 것이다.” 이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재취업은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문제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 있다.
“공공기관에서 성공한 방식이 민간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
공공기관에서의 경력은 철저히 ‘조직 내부 논리’에 의해 작동한다. 예산은 배정되고, 권한은 직급에서 나오며, 성과는 장기 평가로 환산된다. 개인의 판단보다 규정이 우선이고, 속도보다 절차가 중요하다. 이 환경에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의사결정에 익숙해진다. 문제는 이 합리성이 시장에서는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민간과 시니어 일자리 시장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당장 얼마를 벌어올 수 있는가”, “이 사람을 쓰면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가”, “대체 가능한가” 같은 질문이다. 여기에는 경력의 ‘무게’보다 전환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은퇴 공무원은 공공기관의 경력을 그대로 들고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조직에서 인정받던 방식 그대로 자신을 설명하고, 과거의 직함으로 현재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기업과 시장이 바라보는 ‘공공기관 출신 시니어’의 실제 모습”
재취업 컨설턴트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지적한다. 공공기관 출신 시니어의 이력서는 길지만, 시장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책 기획 20년”이라는 문장은 민간에서 곧바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이 매출, 비용 절감, 리스크 관리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은 분명하다. 공공기관 출신 시니어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릴 것이라는 선입견, 조직 문화 적응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를 동시에 안고 들어온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시니어 채용 이후 갈등을 겪는다. 역할과 권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과거의 방식으로 조직을 ‘지도’하려는 태도가 문제로 번진다. 이때 기업은 개인의 경력이 아니라 조직의 안정성을 택한다.
“자리를 찾는 순간, 재취업은 이미 실패한다”
은퇴 공무원이 가장 많이 실패하는 재취업 선택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자리 중심 사고’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앉을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한다. 자문위원, 상근 고문, 컨설팅 직함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시장은 자리를 주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준다.
또 하나의 착각은 ‘경험의 자동 전환’이다. 공공기관에서 쌓은 경험이 별도의 학습 없이 민간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규제 중심의 사고와 고객 중심의 사고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시니어 일자리는 단기 계약을 전전하다 끝난다. 실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환을 준비하지 않은 선택의 결과다.

“경력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두 번째 일”
시니어 일자리는 복지의 연장이 아니다. 또 다른 경쟁의 장이다. 은퇴 공무원이 재취업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 직함, 과거의 인정, 조직이 보호해 주던 안전망이다. 그리고 새로 가져야 할 것이 있다. 시장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는 능력, 작은 역할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태도, 그리고 배우는 데 대한 겸손이다.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해왔는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다음 재취업 선택 역시 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