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건성(푸젠성) 산악 지대에 자리한 토루(土樓, Tulou)는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집단 주거의 결정체다. 흙과 나무, 대나무를 다져 쌓은 이 거대한 원형·방형 건축물은 2008년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토루의 진짜 가치는 ‘희귀한 건축물’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이주·공동체·환경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데 있다.

전란의 기억이 만든 집, 정체성이 된 공간
토루는 중원에서 남하한 객가인(客家人)의 이주사에서 태어났다. 전쟁과 혼란을 피해 내려온 이들은 산지에 터를 잡고, 생활과 방어를 하나로 묶은 ‘주전(住戰) 복합’ 구조를 고안했다. 외벽의 창은 최소화하고 출입구는 하나만 두어 외부 침입과 산짐승을 막았다. 집은 곧 성곽이었고, 일상은 곧 생존이었다.
평등을 설계한 공동체의 미학
토루 내부의 방들은 크기와 구조가 동일하다. 혈연 중심의 씨족 사회였지만, 주거만큼은 위계보다 평등을 택했다. 중앙 광장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자리해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고, 수십 가구에서 많게는 800명에 이르는 같은 성씨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살았다. 공간의 설계가 곧 가치의 선언이었다.

자연과 타협한 기술, 지속가능성의 원형
두꺼운 흙벽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지진에도 견디는 내구성은 경험의 축적이 낳은 기술이다. 산지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배치된 토루는 자연과의 조화를 전제로 한다. 오늘날 ‘지속가능한 건축’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개념을, 토루는 이미 수백 년 전 실천하고 있었다.
오해의 역사: ‘핵 격납고’로 보인 집
냉전 시기, 미국은 위성 사진 속 푸젠성의 원형 토루를 핵미사일 격납고로 오인했다. 대만과 가까운 내륙 산지에, 수백 개의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숨어 있으니 의심이 갈 만도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미 정보기관 CIA(중앙정보국)이 관광객으로 위장한 요원을 파견했고, 그제야 ‘핵 시설’이 전통 객가족 가옥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잘 모르면, 역사는 늘 위협으로 보인다.
세계 질서의 전환, 밀려난 이름들
이 오해의 시대는 국제정치의 큰 물결과 겹친다. 1972년 리처드 닉슨의 방중 이후, 대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중국 대륙 정부로 대체되었다. 1992년 한·중 수교는 서울의 외교 지형도 바꾸었다. 질서는 이동했고, 명칭과 자리는 바뀌었다. 그러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이미 주변에서 징후는 자라나고 있었다.
토루가 주는 오늘의 교훈
토루는 말한다. 역사는 멈추지 않으며, 우리가 보는 ‘수상함’은 종종 무지의 그림자라는 것을. 집을 성곽으로 만들었던 선택, 평등을 공간으로 구현한 설계, 자연과 타협한 기술은 모두 시대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국제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변화는 축적되고, 어느 순간 제도와 지도를 바꾼다.
주변의 변화를 세심히 살피는 일—그것이 오해를 줄이고, 다음 선택의 비용을 낮춘다. 토루는 과거의 건축이지만, 오늘의 감각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