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가 중식에서 다시 배워야 할 것
기억력은 왜 식탁에서 시작됐을까
기억력이 떨어질 때 우리는 보통 수면, 스트레스, 스마트폰을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검색한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 우리는 왜 음식과 기억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됐을까.
중국 전통 식문화에서는 이 질문이 낯설다. 기억은 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느냐는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리듬과 집중의 깊이를 좌우하는 생활의 중심이었다.
중국에서 음식은 늘 ‘먹는 약’이었고, 식탁은 일상의 처방전이었다.
중국의 오래된 식문헌을 보면 기억력이라는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신이 맑다, 생각이 안정된다,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 같은 표현이 반복된다. 기억을 단일 기능으로 쪼개지 않고, 몸과 마음의 흐름 안에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현대 뇌과학의 언어와 다르지만, 방향성만 놓고 보면 놀랍도록 닮아 있다.
우리는 그동안 뇌를 너무 고립시켜 왔다. 머리만 잘 관리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중국 전통 식문화는 말한다.
기억은 식탁에서부터 관리돼 왔다고.
중국 식문화에서 음식은 ‘조절의 기술’이었다
중국의 식문화는 맛의 다양성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특징은 음식이 항상 ‘균형 조절의 도구’로 인식됐다는
점이다. 춥고 더움, 건조함과 습함, 무거움과 가벼움 같은 개념이 음식 선택의 기준이 됐다.
이 사고방식에서 기억은 과도한 자극이나 불균형이 쌓일 때 흐려진다. 기름진 음식,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 불규칙한
식사는 몸의 리듬을 흐트러뜨리고, 그 결과 생각도 흐려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중국의 전통 식탁에는 강한 맛과 함께
반드시 이를 누그러뜨리는 요소가 공존했다.
마라처럼 자극적인 맛이 있어도, 국물과 채소, 차가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극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는 기억을 지키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강화’하기보다 ‘흐름을 유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중국 식문화에서 기억은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능력이 아니라, 오래 유지해야 할 상태였다. 시험을 앞둔 학생보다,
평생 학문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된 식탁이었다는 점에서 이 관점은 오늘날과 다르다.
향, 맛, 반복이 만드는 기억의 구조
중국 전통 식문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기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기억과 밀접한 요소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향이다. 향신료와 차 문화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감각을 깨우는 장치였다.
향은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된 감각이다. 특정 냄새가 오래된 장면을 즉각 떠올리게 하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중국 식탁에서 향은 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지만, 식사라는
경험 자체를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역할도 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반복이다. 중국 가정식은 화려함보다 익숙함을 중시했다. 비슷한 재료, 비슷한 조리법이
계절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며 반복됐다. 이 반복은 몸의 리듬을 안정시키고, 사고의 패턴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여겼다.
여기에 차 문화가 더해진다. 식사 전후의 차는 소화를 돕는 행위이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급하게 정보를
밀어 넣기보다, 천천히 정리하고 흘려보내는 습관이 기억의 질을 좌우한다고 본 것이다.
중국 전통 식문화는 기억을 훈련하지 않았다. 기억이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 차이가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시사하는 지점이다.
뇌를 자극하지 않고, 뇌를 돕는 식탁
현대 사회의 식사는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빠른 섭취, 강한 맛, 즉각적인 만족이 기준이 됐다. 이는 집중력을 잠시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피로를 남긴다. 중국 전통 식문화는 이와 정반대의 방향에 서 있다.
중국식 식탁의 핵심은 ‘적당함’이다. 지나치게 맵지도, 지나치게 기름지지도 않게 조절하는 방식은 뇌를
흥분시키기보다 안정된 각성 상태로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억은 과도한 긴장 상태보다, 안정된 집중
상태에서 더 잘 작동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또한 식사의 속도 역시 중요했다. 함께 먹고, 천천히 대화하며, 음식을 나누는 방식은 식사를 정보 섭취가 아닌
경험으로 만든다. 경험은 단순 정보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
중국 전통 식문화는 기억을 관리하는 특별한 음식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을 소모시키지 않는 식사 방식을
강조한다. 이것은 현대인의 식습관이 가장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우리는 뇌를 더 쓰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찾는다. 그러나 중국 식문화는 말한다. 뇌를 오래 쓰려면, 덜 소모해야 한다고.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먹고 있는가
중국 전통 식문화가 기억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기억을 별도의 관리 대상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기억은 몸과 생활이 만들어내는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는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정작 매일 반복되는 식사는 가장 단순한 선택
기준으로 소비한다. 빠른지, 자극적인지, 배부른지가 기준이 된다. 이 식탁에서 기억은 버텨야 할 대상이 된다.
중국의 오래된 식탁은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급하게 먹고, 왜 이렇게 강한 맛을 찾게 됐을까. 그리고 그 결과로
무엇을 잊고 있는가.
기억력은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 다만 서서히 무너지거나, 조용히 유지된다. 중국 전통 식문화는 후자를 택해왔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아주 작은 선택 하나를 바꿔보는 것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속도를 늦추고, 자극을 줄이고,
식사를 하나의 경험으로 대하는 것. 기억을 위해 가장 오래된 방법은 여전히 식탁 위에 있다.
중국 전통 식문화와 음식 철학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관련 식문화 자료와 전통 요리 기록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오늘 한 끼를 천천히 먹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 기억은 늘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관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