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방 한가운데, 여섯 살 여자아이가 인형을 쥔 채 앉아 있다. 놀이에 몰입한 듯 보이지만, 눈이 반복적으로 깜빡인다. 아이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질문을 던져도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장면은 많은 놀이치료사에게 익숙하다. 틱은 이렇게 말없이 등장한다.
눈 깜빡임, 어깨 들썩임, 입 주변의 미세한 움직임. 그것은 의도도 아니고, 고의도 아니다. 아이의 신경계가 감당하고 있는 긴장의 흔적이다. 문제는 어른의 시선이다. 우리는 이 움직임을 ‘없애야 할 증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읽어야 할 신호’로 볼 것인가. 이 선택이 평가의 질을 결정한다.
틱은 행동이 아니라 신호다
틱 증상은 국제적으로도 아동기에서 비교적 흔하게 관찰된다.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한 DSM-5에 따르면, 일과성 틱은 아동의 약 20% 이상이 경험할 수 있는 발달적 현상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틱을 ‘정서와 분리된 신경 증상’으로만 볼 수 없음을 동시에 시사한다.
발달심리학자 Jean Piaget는 아동이 언어로 자신의 내적 상태를 충분히 조직하기 이전 단계에서는 행동과 신체 반응이 사고를 대신한다고 보았다. 여섯 살 아이에게 틱은 설명되지 않은 감정의 잔여물이다. 이 시기에 섣부른 병리화는 아이의 자기 인식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그래서 임상 장면에서는 진단보다 관찰이 먼저다.
진단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관찰의 단계
놀이평가는 이 관찰을 구조화한 도구다. Virginia Axline은 놀이를 “아동의 자연스러운 언어”라고 정의했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불안을 조절하고, 통제감을 회복하며, 관계를 재현한다. 틱 증상을 보이는 아이의 놀이에는 종종 공통점이 있다. 놀이 흐름이 끊기기 쉽고, 실수나 변화에 과도하게 반응하며, 반복적 조작에 집착하는 경향이다.
이는 신경학적 결함의 증거라기보다 긴장 상태에서 나타나는 적응 방식으로 해석된다. 놀이치료사는 여기서 ‘증상의 빈도’보다 ‘놀이의 질’을 본다. 틱이 언제 심해지고 언제 줄어드는지, 놀이의 어떤 장면에서 변화가 나타나는지가 평가의 핵심이다.
놀이평가가 드러내는 비언어적 현실
틱을 억제하도록 요구하는 개입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동 불안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결과다. 놀이평가의 임상적 가치는 틱을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아이의 신경계가 어떤 상황에서 과부하에 걸리는지를 밝혀내는 데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환경 조정, 부모 반응 조율, 정서 조절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개입의 핵심이 된다. 아이를 ‘통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조율이 필요한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 이것이 놀이평가가 갖는 윤리적 의미다.
아이를 ‘고치기’보다 ‘이해하기’ 위한 임상적 태도
눈을 깜빡이는 아이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증상을 지우는 데 급급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할 것인가. 놀이평가는 후자를 선택하는 평가다. 틱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해받지 못한 경험은 오래 남는다. 아이의 몸이 먼저 말했을 때, 어른은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놀이치료실은 바로 그 준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