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싫어! 싫어! 싫어!” 두 살 민지가 아침마다 옷 입기를 거부한다. 엄마가 고른 예쁜 원피스를 밀어내고, 어제 입었던 티셔츠만 고집한다. "이것만 입을래!" 엄마는 한숨이 나온다. '왜 이렇게 고집이 셀까?' ‘나중에 더 심해지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 '싫어'라는 말 속에는 아이의 건강한 성장 신호가 숨어 있다.
"싫어"는 "나"를 발견한 신호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생후 18개월에서 3세를 '자율성 대 수치심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이 시기 아이는 '나는 엄마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의 의지를 실험하기 시작한다. "싫어"라는 말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자아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발달의 이정표다. 심리학자 마거릿 말러(Margaret Mahler)는 이를 '분리-개별화 과정'이라 불렀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분리되면서 독립된 개체로 성장한다.
세 살 준호는 식탁에서 "나 혼자 먹을래!"라고 말한다. 숟가락질이 서툴러 밥알이 사방에 흩어지지만, 아빠는 참고 지켜본다. 준호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이 '싫어'와 '혼자 할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자율성의 표현이다.
아이가 "싫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불복종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의 시작이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율성을 존중받은 아이들은 이후 또래 압력에 강하고, 자기조절 능력이 뛰어나며, 타인의 경계도 존중하는 성인으로 성장한다. 반대로 모든 거부를 억압당한 아이는 두 가지 극단으로 나아간다. 과도하게 순응적이 되어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청소년기에 폭발적으로 반항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Diana Baumrind)의 양육 유형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권위주의적 양육(무조건 복종 요구)보다 권위적 양육(한계는 있되 자율성 존중)이 아이의 건강한 발달을 돕는다.
발달 단계별 "싫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18개월~2세는 본능적 거부시기로 모든 것에 "싫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힘을 실험한다. 뇌과학적으로 이 시기는 전두엽이 급속히 발달하며 의사결정 회로가 형성되는 때다. 2~3세는 자아 주장시기로 "나 혼자 할래", "내가 할 거야"가 많아진다. 자기효능감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결정적 시기다. 3~4세는 협상의 시작시기로 "싫은데... 그럼 이거는 어때?"처럼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하는 단계다.
부모의 현명한 대응 전략을 알아보자. 감정은 인정, 한계는 명확히하자. 두 살 서연이가 이를 닦기 싫다고 떼를 쓴다. “이 닦기 싫구나. 하지만 이는 꼭 닦아야 해. 엄마가 닦아줄까, 혼자 해볼까?” 감정 인정(validation)과 한계 설정(limit setting)을 동시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임상심리학자 로스 그린(Ross Greene)은 이를 '협력적 문제해결'이라 명명했다.

“이 옷 입을래, 저 옷 입을래?” “지금 할래, 5분 후에 할래?” 선택 이론(Choice Theory)에 따르면, 제한적이지만 실제적인 선택권은 아이의 통제감을 높이고 저항을 줄인다. 무한한 자유는 오히려 불안을 증가시킨다.
세 살 지훈이가 놀이터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드러눕는다. “더 놀고 싶었구나. 정말 재미있었지. 하지만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야. 내일 또 오자.” 감정코칭(Emotion Coaching) 연구의 선구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공감이 선행될 때 아이가 부모의 지도를 수용할 준비가 된다고 밝혔다.
“우리 아이는 '싫어'라는 말을 안 한다. 너무 순해서 걱정이다.” 이런 경우, 아이가 거부할 권리를 학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기주장 훈련이 필요하다. “이건 어때? 좋아, 싫어?” “○○이는 어떻게 하고 싶어?” 부모가 먼저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그것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싫어"를 들을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재해석해보자. ‘우리 아이가 자기 의견이 생겼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신호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때로는 "엄마도 지금 힘들어. 잠깐 쉬었다 이야기하자"라고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 부모의 감정 조절 모델링 자체가 아이에게 중요한 학습이 된다.
"싫어"라는 말은 아이가 세상과 나 사이에 경계를 긋는 첫 번째 선이다. 이 선이 있어야 나중에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 신경과학 연구는 자율성을 경험한 아이의 뇌에서 전두엽 발달이 더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조절, 의사결정, 문제해결 능력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이의 "싫어"를 두려워하지 말자. 대신 이렇게 물어보자.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이 질문 속에서 아이의 자아는 더욱 단단하게 자라난다. "싫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언젠가 "좋아"라고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