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여름, 한국 사회는 정치와 공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5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총선을 거치며 누적된 부정선거 규탄 운동이 전국 대학과 고교로 번져 휴교가 이어지던 그때, 박정희 정권은 전혀 다른 이름의 ‘사건’을 호출했다. 7월 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대규모 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동백림(東柏林:동베를린의 한자표기) 사건’이다. 발표의 파급력은 컸고, 거리의 분노는 급속히 식었다. 그 명단의 맨 위에는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과 함께, 동양화의 경계를 넓히던 거장 “이응노”가 있었다. 정치의 언어는 예술의 이름을 삼켰고, ‘사건’은 한 개인의 삶과 작업을 통째로 흔들었다.
정치의 필요가 만든 ‘대형 사건’
1967년 당시, 집권 세력은 개헌선을 확보한 총선 이후 거센 저항에 직면해 있었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을 발표하며 유학생·교민·예술가·교수 등 194명 연루, 107명 입건이라는 전례 없는 숫자를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의 종착지는 전혀 달랐다. 간첩죄로 송치된 23명 가운데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형과 무기징역까지 선고됐던 이들마저 수년 내 모두 석방됐다.
세월이 흐른 뒤,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 규명 기구는 이 사건이 정치적 목적 아래 과대 포장됐다고 결론지었다. 불법 연행과 고문, 무리한 수사 확장, 그리고 국제적 외교 마찰까지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정권의 수장 “박정희”가 사전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 뒤따랐다.
감옥에서도 멈추지 않은 ‘선’
이응노에게 ‘동백림’은 곧 구속과 수감의 시간이었다. 그는 서대문·대전·안양을 거치며 1년 8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빌미는 단순했다. 전쟁 중 납북된 아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구 동독의 수도 동백림을 찾았다는 사실뿐이었다. 그 희망은 곧 죄목이 되었다.
그러나 감옥은 그의 선을 꺾지 못했다. 이응노의 작업은 물질을 덜어내며 더 멀리 갔다. 문자와 선, 여백의 긴장은 오히려 응축되었고, 유럽의 미술평론가와 미술관장, 동료 작가들은 한국 정부에 석방 탄원을 보냈다. 예술은 국경을 넘어 연대했고, 정치의 프레임을 벗겨냈다.
‘기념관’이 증언하는 시간
오늘 충남 홍성의 이응노의 집은 그 시간을 조용히 증언한다. 설계자 “조성룡”은 이 공간을 “눈물겹게 지은 기념관”이라 했다. 건립 과정의 반대와 오해,“좌파 화가에게 무슨 기념관이냐?”는 일부 주민의 반대를 넘어, 조성룡 선생은 거장의 담백한 예술정신을 택했다. 화려함 대신 자연과의 조응, 용봉산과 월산의 풍경을 품은 낮은 태도 등 “고암이 성장기에 보고 자란 자연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설계의 원칙이었다고 밝혔다.
사건을 넘어, 예술은 남는다
동백림 사건은 정치가 예술을 호출해 프레임에 가둔 사례로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증명한 것은 반대였다. 사건은 해체되었고, 작품은 남았다. 이응노의 선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권력의 언어가 닿지 못한 지점을 가리킨다. 그것은 묻는다.
국가는 언제 예술을 적으로 만드는가, 그리고 예술은 어떻게 국가를 넘어서는가.

이응노는 무죄로 석방되었지만 “좌파”라는 주홍글씨는 2026년 지금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일부 사람들을 통해 남아있다. 우리가 “사건”의 이름으로 지워진 개인의 삶을 다시 읽을 때, 비로소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되돌려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동백림의 그늘에서, 이응노의 선은 끝내 꺾이지 않았다.
참고 :
민주화운동사전 https://dict.kdemo.or.kr/entry/13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7998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3/05/22/ET5SUCNL4FGQTFVDBZUAL4TH7Q/검찰, '동백림 간첩단' 故윤이상 재심 결정에 항고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305182026005윤이상의 “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https://archives.kdemo.or.kr/collections/view/10000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