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를 운영하던 사람이 왜 가게 하나를 못 지킬까”
“나는 평생 예산을 다뤘고 사람도 관리해 봤다.”
은퇴를 앞둔 공무원들이 자영업 창업을 말할 때 가장 자주 꺼내는 문장이다. 정년퇴직과 함께 손에 쥔 퇴직금은 오랜 근무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진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지는 순간, 그 돈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생존의 방패가 된다. 그래서 많은 은퇴 공무원은 ‘안정적인 장사’라는 말을 찾는다. 프랜차이즈 카페, 동네 음식점, 소규모 학원, 무인점포 같은 선택지 앞에서 그들은 숫자를 계산하고 규정을 검토한다. 계획은 늘 그럴듯하다.
하지만 통계는 냉정하다. 은퇴 공무원이 퇴직금으로 시작한 자영업의 상당수가 2년을 넘기지 못한다. 폐업 신고서 위에 찍히는 날짜는 늘 비슷하다. 오픈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 더 버티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시점이다. 이유는 단순히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들의 실패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그리고 그 패턴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착각’에서 시작된다.
공무원 경력과 자영업 현실의 간극
공무원 사회는 예측 가능성과 규칙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업무는 매뉴얼로 정리되고, 권한과 책임은 직급에 따라 분명히 나뉜다. 성과는 개인보다 조직 단위로 평가된다. 이 구조에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시스템이 나를 지켜준다’는 감각에 익숙해진다. 문제는 은퇴 이후 이 감각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자영업은 정반대다. 매뉴얼은 참고일 뿐이고, 현장은 늘 변한다. 매출은 어제의 노력과 오늘의 선택이 즉각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조직이 보호해 주지 않는다. 잘못된 의사결정의 대가는 곧바로 통장 잔고로 돌아온다. 공무원 출신 은퇴자들이 이 간극을 과소평가할수록 실패 확률은 높아진다.
또 하나의 맥락은 자영업 시장의 구조 변화다. 과거에는 상권이 천천히 변했고, 단골이 쌓이면 안정이 보장됐다. 지금은 다르다. 온라인 리뷰 하나가 매출을 흔들고, 인근에 생긴 신상 가게 하나가 유동을 바꾼다. 프랜차이즈는 빠르게 늘고, 임대료는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퇴직금으로 시작하는 소규모 창업’은 이미 고위험 선택지에 가깝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실패의 공통 장면들
자영업 컨설턴트들은 은퇴 공무원 창업 사례를 보면 비슷한 장면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첫째, 과도한 초기 투자다. “어차피 마지막 직업인데 제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인테리어와 장비에 돈을 쓴다. 이때 퇴직금의 절반 이상이 개업 비용으로 사라진다. 둘째, 운영의 현장성을 과소평가한다. 직원 관리, 재고 손실, 고객 불만 같은 문제를 ‘곧 정리되겠지’라고 넘긴다. 셋째, 매출 변동에 대한 내성이 약하다. 한두 달 장사가 안 되면 심리적 압박이 급격히 커진다.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들의 시각도 흥미롭다. 은퇴 공무원 점주는 계약과 규정을 꼼꼼히 읽는 데는 강하지만, 현장 대응은 느리다고 말한다. 메뉴 구성이나 프로모션을 본사 지침대로만 운영하다가 지역 상권 특성을 놓친다. 반대로 개인 창업을 택한 경우에는 ‘자유’를 과대평가해 기준 없는 운영에 빠진다.
금융 전문가들은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퇴직금은 투자 자산이 아니라 생계 자산이라는 점이다. 이 돈을 한 번에 묶어두면 실패 시 회복이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은퇴 공무원은 “다시 취업하면 된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실제로는 재취업이 쉽지 않고, 그 사이 생활비 압박이 창업 실패를 가속한다.
은퇴 공무원이 빠지는 다섯 가지 착각
첫째 착각은 안정 착각이다. 공무원 경력은 안정의 상징이지만, 자영업에서는 아무런 안전망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에 둔감해지는 요인이 된다.
둘째는 관리 착각이다. 행정 관리와 장사 관리는 다르다. 장사는 숫자 이전에 사람의 감정과 동선, 선택을 다루는 일이다.
셋째는 규모 착각이다. “작게 시작했다”는 말과 달리, 퇴직금을 투입한 창업은 이미 큰 판돈이다. 손실을 감당할 여지가 적다.
넷째는 시간 착각이다. 은퇴 후 시간이 많을 것 같지만, 장사는 24시간의 집중을 요구한다. 체력과 감정 소모가 예상보다 크다.
다섯째는 출구 착각이다. 실패해도 접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권리금 손실, 위약금, 임대료 정산이 남는다. ‘깔끔한 철수’는 거의 없다.
이 다섯 가지 착각이 겹치면 결과는 빠르다. 초기 6개월은 준비된 자본으로 버틴다. 1년 차에는 매출 부진을 노력으로 덮는다. 2년 차에 들어서면 체력과 자금이 동시에 고갈된다. 그때 남는 것은 후회와 줄어든 노후 자산이다.

창업이 아니라 전환이라는 질문
은퇴 공무원의 자영업 실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 온 경력 구조와 노후 인식의 결과다. 평생 조직 안에서 일한 사람에게 은퇴 후 선택지가 ‘창업’밖에 없다는 현실이 더 큰 문제다. 퇴직금으로 가게를 여는 대신, 그 돈을 어떻게 나눠 쓰고, 어떤 속도로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부터 다시 묻는 접근이 필요하다.
창업을 하더라도 ‘본업’이 아닌 ‘전환’의 관점이 필요하다. 소액 실험, 파트타임 운영, 기존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 등 실패 비용을 낮추는 선택지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가게가 망해도 내 삶은 버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면, 퇴직금 창업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에 가깝다.
은퇴 이후의 삶은 두 번째 출발선이지 마지막 도박판이 아니다. 공무원으로 쌓은 경험은 분명 자산이다. 다만 그 자산을 지키는 방식은 가게 문을 여는 것 말고도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