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는 ‘가짜’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위작(僞作), 모작, 진품 논란, 감정 싸움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다. 반면 음악에서는 “이 곡은 가짜다”라는 논란을 거의 듣지 못한다. 왜 미술에는 가짜가 넘쳐나는데, 음악에는 가짜가 없을까. 이 질문은 예술의 본질 차이를 드러내는 흥미로운 단서다.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존재 방식에 있다. 미술 작품은 대부분 ‘단 하나의 원본’을 전제로 한다. 캔버스 위에 남은 붓질, 물감의 균열, 작가의 손길은 유일무이한 물리적 흔적이다. 이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문제가 생긴다. 누군가 비슷하게 그릴 수는 있지만,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시간·손·재료를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틈을 파고들어 위작이 탄생한다.

반면 음악은 처음부터 복제 가능한 예술이다. 음악의 핵심은 악보와 구조에 있다. 악보는 설계도와 같아서, 작곡가가 누구인지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전 세계 수천 개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지만, 그때마다 “가짜 베토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음악은 원본이 연주가 아니라, 작품의 형식과 아이디어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감정 기준의 차이다. 미술 작품의 진위는 과학 감정, 이력, 작가의 서명, 캔버스 연대 분석 등 복잡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음악은 귀로 즉시 검증된다. 작곡가의 스타일과 화성, 구조가 맞지 않으면 전문가들은 바로 알아차린다.
만약 누군가 “새로 발견된 모차르트 교향곡”을 내놓는다면, 음악학자와 연주자들은 곡을 듣는 순간 시대적 문법이 맞는지부터 따진다. 음악에서는 위작이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음악에는 ‘해석’은 있어도 ‘위작’은 없다.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와 연주자에 따라 빠르기와 감정, 분위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는 가짜가 아니라 다른 해석이다. 오히려 음악은 다양하게 연주될수록 작품의 생명력이 길어진다. 미술에서 복제는 가치 하락을 의미하지만, 음악에서 반복 연주는 가치 확장이다.
경제 구조도 차이를 만든다. 미술 시장은 희소성이 곧 가격이다. 단 하나뿐인 원본이 수백억 원의 가치를 만들면서, 가짜를 만들 유혹도 커진다. 반면 음악은 공연, 음원, 저작권 수익 구조를 통해 가치가 분산된다. 한 곡이 여러 방식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원본을 속여서 팔 이유’가 상대적으로 적다.
결국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하면서도 깊다. 미술은 하나뿐인 물건의 예술이고, 음악은 끝없이 재현되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미술에는 진짜와 가짜가 존재하지만, 음악에는 오직 잘 만든 곡과 그렇지 않은 곡만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관에서는 진품을 찾고, 콘서트홀에서는 해석을 즐긴다. 같은 예술이지만,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가짜의 유무’도 달라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