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도 시골 어르신들은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음식을 조금 떼어내 멀리 던지며 “고수레~ 고시레~”하고 외치곤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고시레, 고시래, 고씨네 등, 조금씩 다르지만 표준어는 “고수레”라고 한다. 이 말은 단군이 태어나기 전, 단군의 아버지였던 환웅(桓雄)이 세상을 다스릴 때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환웅(桓雄)이 천제(天帝)인 아버지 환인(桓因)의 명을 받아 세상에 내려와 보니 사람들이 아직 곡식을 심고 농사를 짓는 방법을 몰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참으로 딱해 보였다. 그래서 주곡(主穀) 담당관이었던 우가(牛家)의 고시씨(髙矢氏)에게 농사짓는 법을 주관해서 백성들을 먹여 살리도록 하라고 명했다. 그런 명을 받은 고시씨는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방법과 짐승들을 모아 가축을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그 덕분에 먹고 사는 일이 좋아진 사람들이 고시씨(髙矢氏)의 은혜를 기억하고자 집 밖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음식을 조금씩 떼어내 “고시래(高矢來, 고씨여 오소서)~”라고 했는데 이는 농사법을 가르쳐 주었던 고시씨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때, 우리의 명절 풍속과 각종 놀이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아 1925년에 출판한 최영년(崔永年)의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단군 때 고시씨(髙矢氏)가 개간과 농사를 가르쳐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현재까지 농부들은 들에서 밥을 먹을 때 한 술 떼어내 던지면서 “고시래(高矢來)라고 하며 제사를 지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고시씨가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가축 기르는 법을 가르쳐준 다음에 가만히 지켜보니 걱정스러운 점이 또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날 것으로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음식을 날로 먹다가는 배탈이 날 수도 있고, 기생충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므로 위험천만해 보였다. 그렇지만 고시씨도 어떻게 하면 불을 만들 수 있는지를 몰라 고민이 많았다.
하루는 고시씨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손쉽게 불을 일으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숲속을 거닐고 있었는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면서 달려들었다고 한다. 고시씨는 호랑이를 큰소리로 꾸짖으면서 돌을 내던졌는데 던진 돌이 호랑이한테 맞지 않고 엉뚱하게도 옆에 있는 바위의 모서리에 맞으면서 “번쩍~”하고 불꽃이 튀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불을 일으키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고시씨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돌과 돌을 서로 부딪쳐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돌과 돌을 부딪쳐서 불을 일으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단군왕검 때 의약장(醫藥掌)이었던 부소씨(扶蘇氏)가 마른 쑥을 재료로 하여 쇠와 돌을 부딪쳐 좀 더 쉽게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부싯돌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불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개발한 부소씨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부소씨(扶蘇氏)의 성(姓)을 따서 그 돌을 “부씨돌(扶氏石)”이라고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부싯돌”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고수레와 부싯돌”에 관한 우리 고유의 신화가 4,3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전해지고 있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믿기 어려운 신화라고 일축하는 자들도 있지만 어차피 신화시대의 이야기인 만큼 믿거나 말거나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고시씨(髙矢氏)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오래된 풍속인 “고수레(고시래)”는 조선 왕실에서도 행해졌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은 새참을 먹든, 야유회를 가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로 이어지는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들은 많아도 4,300여 년 동안이나 전래되어 온 우리 조상들의 간단한 감사표시인 “고수레, 고시래”를 외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참으로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우리 것을 팽개치고, 참으로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남의 것을 받들고 모셔야 자랑스런 한국인이 된단 말인가?
남의 것을 따라 하는 따라지 인생이 그리도 좋은가? 9천년 이상의 길고 긴 자랑스런 역사를 가진 우리가 왜, 무엇 때문에 인류 역사의 영원한 떠돌이인 유대민족의 조상을 섬겨야 한단 말인가? 떠돌이 조상이 줄 수 있는 것은 떠돌이 인생뿐이지 않을까? 영원한 떠돌이 인생이 그리도 그립고 좋더란 말인가? 정말 그렇게 되고 싶단 말인가? 자랑스런 우리 한민족을 떠돌이 유대민족의 조상이나 받드는 따라지 인생, 따라지 민족으로 그렇게도 만들고 싶단 말인가? 최소한의 민족 자존심도 없는 이 따라지 인생들아, 따라지 인생은 결국 종복(從僕) 인생, 노예 인생이 될 뿐임을 아직도 모르는가?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