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소리는 공기처럼 소비된다. 이어폰 속 음악은 끊임없이 흐르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는 어느덧 무심코 지나치는 배경음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왜 지금의 방식으로 듣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조형되었는지를 묻는 목소리는 드물다. 신간 『소리의 역사』(황원철 저)는 바로 이 지점,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청각의 익숙함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저자 황원철은 음악사를 위대한 작곡가나 명곡의 계보로 정리하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한다. 대신 소리를 단순한 예술적 감상의 대상을 넘어 하나의 물리적 현상이자 정교한 사회적 장치로 규정한다. 인류의 역사를 고정된 점들의 나열이 아니라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파동의 역사로 다시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선사시대 동굴의 울림부터 악기의 탄생, 기보법과 인쇄술의 발달, 그리고 현대의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소리를 둘러싼 기술과 자본, 권력과 욕망이 인간의 귀를 어떻게 설계해 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책에서 소리는 문명을 조직해온 핵심 동력으로 제시된다. 악기의 등장은 신체를 도구로 확장시킨 역사였으며, 소리를 기록하고 복제하게 만든 기보법과 인쇄술은 근대적 시민성과 질서의 감각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녹음 기술이 흩어지는 시간을 포획하는 장치가 되고 라디오 전파가 동시 청취라는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를 탄생시켰듯, 소리는 언제나 당대의 기술과 결합하며 인간의 감각과 사회 구조를 동시에 재편해 왔다.
후반부에 이르러 논의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간다. MIDI와 DAW가 가져온 제작의 민주화부터 샘플링이 던진 저작권 논쟁, 스트리밍 알고리즘이 개인의 취향을 설계하는 방식, 그리고 AI가 창작의 주체로 등장하며 발생하는 변화까지 폭넓게 분석한다. 저자는 기술의 진보를 단순히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책과 윤리, 데이터 권리의 문제를 함께 고찰하며 우리가 현재 어떤 조건 속에서 듣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 책의 또 다른 축은 몸과 감각에 대한 깊은 사유다. 음악은 귀를 넘어 몸을 관통하는 경험이며, 역설적으로 불완전함과 어긋남 속에서 살아있는 감동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그는 완벽한 음질이나 무결한 연주보다는 미세한 흠집과 예측 불가능성이 음악을 비로소 숨 쉬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듣는 행위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기억의 축적이며, 우리의 귀는 시간을 저장하는 가장 오래된 감각 기관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소리의 역사』는 단순한 음악사를 넘어 소리를 통해 인간 문명을 재해석하는 방대한 인문학적 보고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의 익숙한 멜로디와 소음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의미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선택해 왔고 어떤 침묵을 허용해 왔는지, 나아가 새로운 파동 앞에서 어떤 귀를 가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듣는다는 행위 자체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방대한 기록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큰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