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한국드론뉴스닷컴) 손윤제 기자 = 보수·우파, 자유무역 그리고 권력의 역설
자유무역은 흔히 진보의 언어로 오해된다. 그러나 실제로 자유무역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여 온 정치 세력은 역사적으로 보수·우파였다. 이는 이념의 혼란이 아니라, 보수주의가 지닌 세계관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치적 보수주의는 급진적 변화를 경계한다. 사회를 설계 가능한 기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의 산물로 바라본다. 전통과 제도, 시장 질서는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시행착오 끝에 살아남은 생존 구조다. 이 관점에서 자유무역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다. 국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비효율을 낳고, 경쟁을 제한하는 보호주의는 산업을 약화시킨다는 판단이다.
보수·우파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고, 경쟁을 통해 국가 전체의 체력을 키우려는 계산이다. 다만 이 자유는 무조건적이지 않다. 안보, 핵심 산업, 식량과 에너지처럼 국가 생존과 직결된 영역에서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조건부 자유무역을 선호한다. 이는 개방과 보호 사이의 이념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정치적 우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국가 정체성, 안보, 질서, 시장경제를 중시하며 강한 국가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파 내부 역시 단일하지 않다. 헌법과 법치를 존중하는 전통적 보수 우익이 있는가 하면, 질서를 명분으로 제도 자체를 무시하는 급진적 우익도 존재한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논의는 곧 감정의 전쟁으로 추락한다.
문제는 권력이다. 왜 보수·우파는 집권할수록 정의와 청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가. 이는 특정 진영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문제다. 보수·우파는 대체로 기존 권력과 자원의 관리자 역할을 맡아왔다. 군·경·사법, 대기업, 금융, 토지, 제도 권력이 집중된 영역을 다루는 만큼 유혹 또한 크다. 권력과 자원이 모이는 곳에 부패 가능성이 함께 모이는 것은 자연 현상에 가깝다.
또한 보수 정치의 현실주의는 종종 타협을 미덕으로 삼는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전제 위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계산은 쉽게 자기합리화로 변질된다. 여기에 장기 집권이 더해지면 문제는 구조화된다. 처음엔 예외였던 일이 관행이 되고, 관행은 곧 문화가 된다. 청렴은 짧은 권력보다 긴 권력에서 먼저 마모된다.
시장과 권력의 결합 역시 중요한 변수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이 가까워질수록 특혜, 로비, 회전문 인사는 늘어난다. 보수는 이를 효율과 성장의 언어로 설명하지만, 그 순간 투명성은 후순위로 밀린다. 이 지점에서 보수주의가 경계해 온 ‘권력’은 더 이상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된다.
다만 한 가지 착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보수·우파가 유독 부패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더 자주, 더 오래 집권해 왔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지 않은 세력은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기록될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좌파 역시 권력을 장악한 순간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 왔다. 인간은 진영을 바꾼다고 천사가 되지 않는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왜 보수·우파가 정의롭지 못한가가 아니라, 왜 어떤 권력도 감시받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하는가. 보수주의의 가장 큰 역설은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온 사상이, 권력을 가장 오래 쥐었을 때 그 경계를 스스로 허문다는 데 있다.
정치는 이념의 시험장이 아니다. 인간 본성의 스트레스 테스트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아직 완벽한 진영은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권력을 어떻게 제한하고, 어떻게 투명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만이 민주주의를 조금씩 앞으로 움직여 왔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