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력은 뛰어난데, 왜 감동은 남지 않는가
김선용(클래식신문사 대표)
요즘 클래식 공연장을 나서며 자주 같은 말을 듣는다.
“정말 잘 치더라.”
그러나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거의 없다. 다시 떠올리고 싶은 장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연스레 흥얼거리게 되는 선율도 남지 않는다. 박수는 충분했지만, 음악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 낯선 공백 앞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다음 공연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잘 연주했다’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에서 연주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지나칠 만큼 분명하다. 빠른 템포를 안정적으로 소화하는가, 음정과 리듬에 흔들림이 없는가, 난도가 높은 곡을 무리 없이 끝까지 완주하는가. 이 기준은 콩쿠르와 입시, 그리고 영상 중심의 음악 소비 환경 속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누구도 이 기준을 공개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져,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익숙함이 문제다. 이 분명한 기준과 청중의 실제 경험 사이에서 계속 어긋남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잘 연주했는데, 마음에는 남지 않는다. 흠잡을 데는 없지만, 다시 듣고 싶다는 욕구는 생기지 않는다. 이 간극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의 가정을 공유해 왔다. 연주력이 충분히 쌓이면, 감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현실의 공연장은 이 가정을 반복해서 흔든다. 연주력은 해마다 높아지는데, 감동은 오히려 줄어드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연주력이 부족해서 감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주력이 중심이 되면서 감동이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닌가.
기교 중심 교육이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는 연주자의 태도다. 연주자는 음악 앞에 서기보다, 평가 기준 앞에 먼저 선다. 악보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안전하게 통과해야 할 과제가 된다. 어떤 소리를 말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소리가 위험한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 결과 연주는 점점 정교해지지만, 음악은 점점 말이 줄어든다. 소리는 남지만,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반론은 가능하다. 기교는 기본이며, 기교 없이는 표현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 말 자체는 옳다. 그러나 문제는 기교의 유무가 아니라, 기교의 자리다. 기본이 중심이 되는 순간, 음악은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라 검사 항목이 된다. 연주자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점검받는 사람이 된다. 그 순간 음악은 안전해지지만, 낯설지는 않다.
감동은 완성도에서 생기지 않는다. 감동은 선택에서 생긴다. 어디를 기다릴 것인지, 어디를
밀어낼 것인지, 어떤 순간에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그리고 태도는 교육과 무대가 허용한 만큼만 자란다.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말도 자라지 못한다.
연주력은 분명 이전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음악이 머물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길러낸 것은 실력 있는 연주자일까, 아니면 안전한 연주자일까. 감동은 언제나, 안전한 자리 바깥에서 시작된다. 이 질문을 다시 붙드는 것, 그것이 지금 음악 교육과 무대가 가장 먼저 감당해야 할 책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