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붕 없는 감옥에 갇힌 '하나님의 형상'
이스라엘 '가자‘의 새벽은 새소리가 아닌 무인기의 기계음과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으로 시작된다. 불과 수십 킬로미터에 불과한 이 좁은 땅줄기는 이제 '지붕 없는 감옥'을 넘어 '거대한 무덤'이라 불린다. 연일 보도되는 사망자 수치 뒤에는 누군가의 전부였을 아이들의 꿈과,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이 먼지처럼 흩어져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가자’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십자가 위의 예수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이곳의 비극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비인간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이 작동해야 하는지를 묻는 영적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배경: 겹겹이 쌓인 증오의 지층
가자 지구의 비극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발생한 난민들의 이주, 그리고, 여러 차례의 중동 전쟁을 거치며 이곳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2007년 하마스의 집권 이후 계속된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은 ‘가자’의 경제를 고사시켰고, 주민들의 이동권과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축시켰다. 여기에 2023년 10월 발생한 대규모 무력 충돌은 ‘가자’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기독교 관점에서 볼 때, 이 갈등의 근저에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가짜 정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봉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가자’의 무장 세력은 해방을 위해 폭력이 정당하다고 외친다. 그러나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21)고 권면한다. 두 진영 모두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배제의 논리'에 갇혀 있으며, 이는 결국 공멸을 향한 악순환의 톱니바퀴를 돌릴 뿐이다.
현장의 상황: 무너진 건물보다 더 깊이 베인 마음
가자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무너진 집 잔해를 뒤지며 아이의 신발 한 짝을 찾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은 왜 우리를 잊으셨느냐"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왜 우리를 보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가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동과 청소년이다. 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가자 밖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자라났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이 아이들 하나하나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임을 가르친다.
‘가자’에는 비록 소수이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한다.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St. Porphyrius Church) 같은 곳은 전쟁 중에도 무슬림과 기독교인 모두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갈등의 땅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의 실례이다. 폭탄이 종교를 가리지 않듯, 그리스도의 사랑 역시 ‘가자’의 담벼락을 넘어 모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흘러가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 골고다의 눈물과 부활의 소망
지금 가자는 21세기의 골고다 언덕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을 때, 그 비명은 오늘날 가자 지구의 어머니들이 하늘로 내지르는 통곡과 공명한다. 하나님은 저 높은 곳에서 냉철하게 관조하시는 분이 아니라, ‘가자’의 차가운 병원 바닥에서, 굶주림에 지쳐 잠든 아이의 곁에서 함께 울고 계신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비극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가? 해결의 실마리는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된다. 기독교적 화해는 단순히 전쟁을 멈추는 정전 협정을 넘어, 상대방의 고통이 나의 고통임을 깨닫는 '영적 연대'를 의미한다. ‘가자’의 아이가 이스라엘의 아이를 친구로 부를 수 있는 날, 그것은 인간의 정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과 십자가의 용서로만 가능한 기적이다.
‘가자’를 위한 우리의 응답
가자 지구의 비극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의 신앙은 안락한 예배당 안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먼지 날리는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가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평화를 비는 행위가 아니라, 그곳에 짓밟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달라는 간구여야 한다. 작은 나눔, 균형 잡힌 시각,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는 증오의 성벽에 내는 작은 균열이다. 언젠가 그 균열 사이로 하나님의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날을 기대하며, 우리는 오늘 ‘가자’의 아픔을 가슴에 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