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왜 이렇게 알아볼 수 없을까?
선은 흘러가고, 글자는 서로 엉켜 있으며, 분명 한자인데 읽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초서에 끌린다. 이유는 분명하다. 초서는 글씨이면서 동시에 움직임이고, 문자이면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서 입문서로 전해지는 『초결백운가(草訣百韻歌)』는 시작부터 독자를 붙잡는다. 그 첫 문장은 이렇게 말한다.
草聖最爲難(초성최위난) 초서를 잘 하기는 매우 어렵다
입문서의 첫 문장으로는 다소 가혹하다. 초서를 처음 배우려는 초심자에게, 왜 하필 “가장 어렵다”고 선언하는가. 왜 『초결백운가』는 친절한 설명보다 먼저 경고를 던지는가!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초결백운가』는 단지 외우기 힘든 고전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순간, 초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어렵다(難)”는 말은 포기가 아니라 기준의 선언이다. 초서는 감각으로 흉내 낼 수 있는 글씨가 아니며, 빨리 쓰거나 흐트러뜨린다고 완성되는 서체도 아니다. 초서는 형태·필순·연결·생략·문맥이 모두 갖추어 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문자 예술이다. 『초결백운가』는 바로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밝힌 것이다.
씨초포스트가 『초결백운가』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연재는 초서 문구의 뜻을 풀이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대신 초서를 읽는 눈을 기르고, 초서를 바라보는 기준을 세우는 데 초점을 둔다. 각 글자의 형태, 선의 흐름, 반복되는 구조와 규칙을 따라가며, 초서라는 거대한 숲의 지도를 함께 그려보고자 한다.
초서는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움에는 이유가 있고, 길이 있다. 『초결백운가』는 그 길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기 위해 “초서는 가장 어렵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그 첫 문장부터, 하나 씩 읽어 내려가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