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결백운가》는 초서를 처음 접하는 초심자를 위한 교본이다. 그런데 그 첫 문장은 다소 가혹하다.

草聖最爲難 (초서는 가장 어렵다)
이는 분명 초심자를 “놀라게 하는” 문장이다. 왜 입문서가, 그것도 노래처럼 외우게 만든 교본이, 시작부터 “이건 어렵다”고 말할까? 참고로, 초성을 장지 혹은 왕희지로 보아 “초성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씨초에서는 위여우런(于右任)선생의 해석을 따라 “초서를 잘 쓰기가 매우 어렵다”로 했습니다.
1. 환상을 먼저 깨기 위한 선언
《초결백운가》가 등장하던 송대 이후의 시대에는, 초서가 이미 멋과 감흥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 빨리 쓰면, 초서
- 흘려 쓰면, 초서
- 알아보기 어려우면, 초서
이러한 오해와 환상을 가장 먼저 깨지 않으면, 초서 학습은 곧바로 흉내와 모방으로 흐르게 된다.
“草聖最爲難”이라는 선언은 말한다.
초서는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글씨가 아니다. 가장 어렵기에, 가장 정밀하게 배워야 한다.
즉, 이 첫 문장은 초심자를 쫓아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 잘못된 접근을 미리 차단하는 경고문이다.
2. ‘난(難)’은 절망이 아니라 기준 설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난(難)’은 “너는 못 배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 초서는 구조를 알아야하고, 필순을 알아야 하며, 생략의 법칙을 알아야 하고, 문맥과 흐름을 읽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갖추어 질 때 비로소 성립하는 최상위 문자 예술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즉, 첫 문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쉬운 요령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초서를 배우는 올바른 길을 제시한다. 초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방향이다. 《초결백운가》는 초심자들에게 처음부터 그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도록 유도한다.
3. “草聖最爲難”은 단순한 난이도 평가가 아니다. 이 문장은 초서를 기예(技藝)가 아니라 도(道)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 해서·행서는 모방하면서 배울 수 있다.
- 그러나 초서는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경지가 존재한다. 하면된다.
이 선언을 통해 《초결백운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멋을 내기 위해 초서를 배우는가, 아니면 한자의 본질과 필법의 원리를 이해하려 하는가? 이 질문을 숙고한 연후에야 다음 문장으로 나아갈 자격이 있다.
4. 놀라게 한 뒤, 길을 열어 주는 구조
중요한 점은, 《초결백운가》가 놀라게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草聖最爲難” 이후 이어지는 구절들은
- 자형의 미세한 차이
- 점 하나의 유무
- 획의 연결과 생략
을 노래처럼 반복하며 설명한다. 즉 구조는 이렇다.
- 처음에 엄숙하게 경계한다
- 그 다음에는 친절하게 분해한다
- 마지막에는 스스로 볼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전형적인 동아시아 고전 교육 방식이다. 처음에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 그 다음에 기술을 전한다.
5. 《초결백운가》의 첫 문장은 초심자를 겁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다. 어렵지만, 길은 있다. 이 책은 그 길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초결백운가》가 초심자를 위한 책이면서도 첫 문장을 “초서는 가장 어렵다”로 시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초서를 쉽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서를 바르게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덧글 :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역대 서법가들의 초서체를 공개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