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2000년을 전후해서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상동읍 산골짜기에는 묘한 풍경이 있었다. 계곡을 가로막은 댐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물 대신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분가루가 가득하였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성곽처럼 쌓아 올린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한때 이곳에는 텅스텐, 즉 중석(重石)을 캐던 금속광산이 있었다.
텅스텐(tungsten)은 매우 단단해 전구의 필라멘트나 실탄 제조에 필수적인 금속이다. 특히 1970년대 베트남전쟁 시기에는 수요가 폭증해 광산이 성업을 이루었다. “강아지가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값싼 중국산이 밀려오자 광산은 문을 닫았고, 번성의 흔적은 갱도 깊숙이 묻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중석은 원석을 캐낸 뒤 선광(選鑛) 과정을 거쳐 얻는데, 이때 남는 찌꺼기가 ‘광미’다. 분가루 같은 이 광미(鑛尾)에는 비소(As), 납(Pb), 카드뮴(Cd), 크롬(Cr), 구리(Cu) 같은 중금속이 들어 있어 외부로 유출되면 치명적이다. 하지만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아 댐처럼 쌓아두는 것이 현실이었다.
주민들 사이에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진다. 홍수로 논밭 흙이 떠내려가면 이 광미를 가져다 복토를 했는데, 농약을 치지 않아도 병충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독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금·은·구리 같은 금속을 대규모로 캐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일본은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전국의 ‘노다지’를 파헤쳤다. 해방 후 광산은 한국인 손으로 넘어왔지만, 경제성이 떨어지자 제대로 된 마무리도 없이 문을 닫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폐광산에서는 광산폐수가 흘러나와 농토를 오염시켰다. 중금속 검사 결과가 공개되면 농산물이 팔리지 않을까 두려워 발표조차 꺼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에 피해를 취재한 기자가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일도 있었다. 생존과 진실 사이의 비극적인 갈등이다.
2004년 경남 고성의 폐금속광산 주변에서는 ‘이타이이타이병’이 의심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카드뮴과 납 중독으로 뼈가 약해져 작은 충격에도 부러지는 병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 아파”하고 외쳐 붙은 이름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은 정부가 광해방지사업단을 통해 복원에 나서고 있지만, 폐광이 있는 지역은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낮은 산간 지역이다. 사업단이 생기기 전에는 예산조차 마련하지 못해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노다지는 다 가져갔고, 상처만 남았다. 광산업자는 떠났고, 그 땅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주민들만 폐허 위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유독 끝마무리에 약하다. 잘되던 공장도 사양길에 접어들면 폐기물만 남긴 채 사라진다. 돈을 좇아 들어온 사람은 돈이 떠나면 함께 떠난다. 광산과 공장은 다르다. 농촌의 폐가는 삶이 막혀 떠나지만, 사업장은 이익을 얻은 만큼 끝까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모든 폐광이 같은 운명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1912년, 일제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광명동굴(옛 시흥광산)은 일제강점기 징용과 수탈의 현장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1972년 폐광된 뒤 40여 년 동안 새우젓 창고로 사용되며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이 동굴을, 2011년 광명시가 매입해 새로운 선택을 했다.
광명시는 버려진 폐광을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복원했고, 그 결과 광명동굴은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문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이곳은 이제 ‘세계가 놀란 폐광의 기적’이라 불리며, 개발 이후의 책임이 어떻게 지역의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충북 충주시 목벌동에 있는 활석광산이 있다. 1900년에 처음 발견된 활석광산은 1912년 일제가 채굴권을 수탈하여 일본인에게 돌아갔고, 191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석·백옥·백운석 등 광산개발을 하였다. 활석은 석필(石筆) 또는 곱돌이라고도 하며 무른 재질에 양초처럼 매끄러운 촉감을 가진 돌로 돌솥 등을 만들거나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해방 후에는 이를 인수한 국내 업소에서 활발하게 채굴하여 동양 최대의 활옥광산으로 운영되다가, 1980년대부터 중국산 활석이 수입되면서 채산성이 떨어져 채광을 중단하고, 캐나다의 ‘부차드(Butchart) 가든’처럼 수목원을 꾸미려 했으나, 광산을 그대로 살려 갱도 총길이 57㎞ 중 2.3㎞를 동굴 관광지로 만들어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폐허가 된 산업 현장을 주민의 쉼터이자 공공의 자산으로 되돌리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광산과 공장은 여전히 폐기물만 남긴 채 방치되고 있다. 폐허를 주민의 쉼터나 공원으로 되돌려주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사회라면, 발전은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0.1%라고 한다. 끝까지 책임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노다지는 어디로 갔는지 묻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성공의 가치는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떠난 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우냐에 달려 있다. 지금보다 딱 0.1%만 더 책임지는 자세, 그 속에 진정한 일류 사회로 가는 길이 있다.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강 따라 물 따라>(신간)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