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먼저 시작하는 치매 예방 수업(오지현외 공저)을 읽다가 멈춰 선 지점이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치매는 어쩌면 부모가 겪는 마지막 ‘육아’ 일지도 모릅니다. 내 부모의 늙고 병듦을 모시는 경험은 죽음의 관점에서 성장일 테니까‘라는 글쓴이의 말에서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엄마의 17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진단초기에는 오빠집과 가까운 곳에 독거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했고 일일 만보 걷기, 독서, 일기까지 빼놓지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여느 때처럼 안부 전화를 했는데 복지관에 있어야 할 시간에 집에 있더라는 겁니다. 다음날도 똑같이. 일상생활에 틈이 생겼다 싶어 가족회의 끝에 오빠와 합가를 하게 됩니다. 그 시기가 치매 중간단계쯤이었을 겁니다.
6개월쯤 지났을까요. 오빠가 가족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힘들다고 주말엔 모셔가면 좋겠다고. 사실 이때부터 엄마의 뜨내기 생활은 시작됩니다. 오빠집에서 우리 집으로 언니집으로 2년씩 옮겨 다니는 생활이 눈치 보였던지 어느 날 우리 집으로 모셔가는 차 안에서 울음을 토해내십니다. 4남매가 엄마 앞에서 말과 행동은 온순했지만 당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모두 직장을 다닐 때라 달리 방도가 없어 그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엄마를 뜨내기로 살게 했던 자식들이 크게 울어버린 사건이 생겼습니다. 엄마의 작은 죽음을 경험한 겁니다. 균형을 잃고 넘어진 엄마가 일어나지 못했고 응급실로 달려가니 코로나 시기라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합니다. 고통을 호소하며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형제들은 엄마에 대한 부담감을 벗고 책임감으로 뭉치게 됩니다.
환자의 권리를 내세우며 저는 응급실에서 형제들은 대기실에서 버티니 다음날 새벽 4시에 병실을 배정해 줍니다. 대퇴부골절진단을 받고 수술은 잘 됐으나 또 다른 걱정이 생겼습니다. 설령 걸을 수 있다 해도 치매가 급하게 진행돼서 자식들을 못 알아보면 어쩌나 싶은 거죠. 휴대폰을 개통해서 병실에 넣어드리고 매일 2시간씩 통화하고 노래 불러드리고 통화가 안될 때는 간호사 귀찮게 해서 안부를 물었던 진상가족이었습니다. 고령에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위험한 수술을 하고 난 후 자식들이 정신을 차린 거죠.
일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는데 그일 이후 미련 없이 접었습니다. 엄마보다 일이 먼저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동안 치매는 어쩔 수 없이 악화될 거고 마지막에 어떤 상황까지 갈지 모르니 두려운 병이다. 우선 할 수 있는 건 병원 처방약을 먹는 것뿐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도 죽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하고 나니 치매여도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며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정작 치매에 대해 아는게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달려가 치매 관련 책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책 내용을 요약해서 형제들과 나누고 엄마의 사소한 행동들을 서로 공유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상행동에 어찌 대응할지도 알게 되니 엄마와 소통이 보다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치매중증인 지금이 엄마도 우리도 오히려 편안합니다.
엄마가 마지막 육아를 한 셈이죠.
참고; 가족이 먼저 시작하는 치매 예방 수업. 오지현외 공저.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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