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이 칼럼은 박동명 법학박사(한국정책연구원장)가 인공지능이 지방의회와 지방자치 행정에 미치는 영향을 단순한 ‘업무 효율성’ 차원을 넘어, 의사결정 구조와 주민참여 방식의 근본적 재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 글이다. 동시에 AI의 편향, 책임소재 모호화, 감시 사회화 등 행정 과정에서의 고유한 위험을 법·제도적 시각에서 제기함으로써, 기술 낙관론과 기술 비관론을 넘어서는 균형 잡힌 논의를 지향한다.
앞선 칼럼에서 AI가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당선 이후 지방의회가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그것이 지방자치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살펴보고자 한다. 지방자치의 성숙은 지방의회의 전문성과 책임성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현실의 지방의회는 방대한 자료와 복잡한 정책 환경 앞에서 늘 시간과 인력의 한계에 부딪혀 왔다. 수천 쪽에 이르는 예산서, 행정사무감사 자료, 조례안 검토 의견서를 제한된 기간 내에 검토하고 질의해야 하는 의원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한국의 지방의원은 국회의원과 달리 법정 보좌진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국회의원에게는 9명의 보좌진(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등)이 법정 정원으로 지원되지만, 지방의원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법정 보좌진 제도가 없어 대부분의 의정활동을 의원 본인이 직접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수천 쪽의 예산서를 검토하고, 조례안을 작성하며, 주민 민원을 처리하고, 행정사무감사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과정을 의원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지방의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집행부 중심의 지방행정을 고착화시켜 왔다. 인공지능(AI)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지방의회를 위한 새로운 도구이자, 지방자치의 질적 전환을 가능케 하는 동반자로 등장하고 있다.
1. 행정사무감사·예산심사: AI가 찾아내는 ‘숨겨진 쟁점’
지방의회 의원은 매년 수천 쪽의 감사 자료와 예산 설명서를 받지만, 법정 보좌진 없이 이를 모두 검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예산서는 수백 개 사업이 나열된 형태로 제출되며, 전년 대비 증감 사유나 집행률, 성과지표 등을 일일이 대조하려면 상당한 전문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발전한 AI 문서 분석 도구는 동일한 시간 내에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쟁점이 될 만한 부분을 추려낼 수 있다. 예컨대 AI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자동화할 수 있다.
▷ 3년 연속 집행률 50% 이하인 사업 추출
▷ 유사·중복 사업 간 예산 배분의 정합성 검토
▷ 주민의 욕구·민원 청원 데이터와 예산 배분의 괴리 분석
▷ 타 지자체 동일 사업 대비 예산 규모·성과지표 비교
이미 해외에서는 이러한 방향의 시스템이 실제로 시험·도입되고 있다. 일부 대도시 의회와 지방정부는 방대한 예산 항목을 키워드 검색과 자동 요약, 시각화 기능을 통해 분석하는 도구를 도입해, 의원들의 예산안 파악 시간을 의미 있게 줄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과거 수작업에 의존해 오던 예산 검토를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이러한 AI 기반 예산·감사 지원 시스템의 도입을 검토하거나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본격 시행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방의원 여러분께서는 각 지자체에 AI 기반 예산·감사 지원 시스템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2. 인공지능으로 조례 입법하기
우리 나라 지방의회의 조례 입법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타 지자체 조례의 단순 모방이다. 지역 특성과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선진 사례로 알려진 조례를 거의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조례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지역 주민의 신뢰를 약화시킨다.
보좌진 없이 혼자서 전국 243개 지자체의 유사 조례를 일일이 찾아 비교하고, 상위 법령과의 충돌 여부를 검토하며, 주민이 이해하기 쉽게 조문을 작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AI는 바로 이 영역에서 지방의원의 ‘보이지 않는 보좌진’ 역할을 할 수 있다.
AI는 조례 입법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 비교법 분석: 전국 지자체의 유사 조례를 자동 검색·비교하고, 제정 배경·개정 이력·시행 성과를 요약
▷ 법령 충돌 검토: 상위법령, 기존 조례와의 충돌·중복 가능성을 사전 점검하고, 위헌·위법 소지가 있는 조문을 자동 표시
▷ 주민 이해도 향상: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쉬운 언어로 자동 변환하고, 조례의 핵심 내용을 Q&A 형식으로 생성
▷ 영향 평가 시뮬레이션: 조례 시행 시 예상되는 예산 소요, 행정 부담, 수혜 대상 규모 등을 사전 추정
이를 통해 의원은 보다 설득력 있는 정책 논의를 주민설명회와 상임위원회에서 전개할 수 있으며, 지방의회는 단순히 ‘정치의 공간’을 넘어 ‘정책 설계의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3. 주민과의 소통도 인공지능이 한다 - 24시간 민원 수집에서 의제 발굴까지
주민참여는 지방자치의 핵심 가치이지만, 현실에서는 소수의 적극적 참여자와 다수의 침묵하는 주민으로 양분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회는 주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민원·청원·설문을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에는 분명한 물리적 한계가 있다. 법정 보좌진이 없는 지방의원이 하루에 수십 건의 민원 전화와 문자를 받으면서, 동시에 의정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AI 기반 소통 시스템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 AI 챗봇을 통한 민원 1차 대응: 24시간 쉬지도 않고 민원을 수집·분류·요약하고, 유사 민원을 묶어 구조적 개선 과제를 도출한다. 의원은 AI가 정리한 요약본을 단지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판단하면 된다.
▷ SNS·온라인 여론 분석: 지역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온라인 청원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지역별·세대별·이슈별 관심도를 시각화한다.
▷ 숨은 목소리 발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소외계층(예를 들면 노인, 장애인, 외국인 등)의 요구를 간접 데이터와 설문을 통해 추론하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
대만에서는 ‘vTaiwan’ 등 온라인 숙의 플랫폼을 통해 주민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분류·시각화하여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실험이 2010년대 중반부터 진행되어 왔다. 우버 규제, 공유경제 관련 논의 등 여러 정책이 이러한 숙의 과정을 거쳐 제도화된 사례로 국제사회에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서울시 ‘민주주의 서울’, 경기도형 도민참여 플랫폼 등 온라인 참여 채널이 운영되고 있으며, 일부 영역에서 AI 기반 분석 기능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와의 연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4. AI는 만능이 아니다, 그러면 어떤 과제가 있을까?
그러나 AI 도입에는 분명한 위험과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지방자치 행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위험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의사결정의 왜곡과 편향 고착화다.
AI는 학습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만약 특정 지역, 특정 세대, 특정 계층의 데이터만 과다 수집된다면, AI는 소수 집단의 목소리를 과도하게 증폭하고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컨대 온라인 참여가 활발한 2030세대의 의견만 AI가 과도하게 반영하고,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노년층의 의견은 구조적으로 배제될 위험이 있다.
둘째, 의사결정 책임소재의 모호 할 수 있다.
AI가 제시한 분석 결과에 따라 정책을 결정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AI 시스템 개발자인가, 도입을 결정한 집행부인가, 이를 승인한 의회인가. 명확한 책임 원칙 없이 AI를 도입하면, 오히려 “AI가 그렇게 분석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셋째, 감시 사회로의 변질될 우려가 있다.
주민의 민원, SNS 활동, 온라인 행태를 AI가 분석한다는 것은 곧 대규모 개인정보 수집을 의미한다. 익명화·가명화 조치가 충분하지 않으면, 지방자치가 오히려 주민을 감시하는 시스템이나 체계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넷째, 기술 의존에만 의존할 경우, 자칫 인력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의원과 공무원의 정책 판단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퇴화할 수 있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최종 결정과 책임은 인간의 몫이라는 원칙을 잃지 말아야 한다.
5. 법적·제도적 대응 방향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하고 AI를 공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틀이 필수적이다.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을 제안한다.
첫째,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한 AI 활용 근거 마련해야 한다.
지방의회의 AI 도입·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와 기본 원칙, 특히 주민참여 과정에서 AI 활용 시 투명성·공정성 원칙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방자치법에는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둘째, 「개인정보 보호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때는 명확한 동의 절차와 익명화·가명화 처리를 의무화하고, 제3자 제공 및 상업적 활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특히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수집 시, 주민에게 명확한 고지와 거부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AI 윤리 가이드라인과 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는 ‘AI 활용 윤리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감사·시정 조치를 할 수 있는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각 지자체가 ‘AI 윤리위원회’ 또는 이에 준하는 심의기구를 구성해 AI 도입 전 윤리·영향 평가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넷째, 의원·공무원 대상 AI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AI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책임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기술 도입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제 각 지자체는 의원 당선 직후 ‘AI 시대 지방의정 교육 프로그램’을 필수 과정으로 운영하고, 공무원 교육에서도 AI 윤리·활용 교육을 정규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기술은 선택이 아닌,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다.
AI를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향과 원칙으로 사용할 것인가’로 이미 옮겨갔다. 지방의회가 AI를 단순한 편의 장치가 아니라, 정책의 질과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며 주민 참여를 확대하는 공적 인프라로 활용한다면, 한국의 지방자치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이끄는 가치다.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통해 무엇을 실현할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 지방의회가 AI 시대에도 주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정당성과 신뢰를 유지하려면, 기술 도입과 함께 윤리·책임·투명성의 원칙을 반드시 확립해야 한다.
보좌진 없이 상당 부분을 홀로 의정활동으로 감당해야 하는 우리 나라 지방의원에게 AI는 절실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도구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쓰일지, 아니면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26년 지방선거 이후 구성될 새로운 지방의회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그 선택 위에 한국 지방자치의 미래가 놓여 있다.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