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는 사람 따로, 돈 버는 사람 따로
— 자본주의의 잔혹한 공식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제3세계 농부의 삶을 바꿉니다.”
코너 우드먼은 기차 안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다 이 문구를 보고 멈춰 섰다.
그는 런던 금융가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촉망받는 애널리스트였지만, 이 한 줄의 문장에서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공정무역 로고가 붙은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정말로 누군가의 삶이 나아지는 걸까?
이 작은 의문은 그를 위험천만한 세계 일주로 이끌었다.
니카라과, 아프가니스탄, 콩고, 중국, 라오스, 코트디부아르까지.
그는 우리가 ‘윤리적 소비’라고 믿고 있는 세계 무역 시스템의 뒷면을 파헤쳤다.
결론은 간단하면서도 잔혹했다.
세상은 ‘착한 소비자’ 덕분에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소비의 이익은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흘러간다.
니카라과의 해안에는 다리를 절거나 휠체어를 탄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심해 잠수를 하며 바닷가재를 잡는 잠수부들이다. 낡은 산소통 하나에 목숨을 걸고 바다로 들어가지만, 하루 벌이는 고작 2천 원 남짓이다.
그들이 잡은 바닷가재는 고급 레스토랑의 식탁 위로 올라가고, 그들의 마을에는 불구와 가난만 남는다.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는 하루 18시간씩 노동하는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스마트폰을 조립한다.
한편, 그 휴대폰의 핵심 광물 ‘콜탄’을 캐는 콩고의 광부들은 총부리를 피해 붕괴 직전의 광산으로 들어간다.
하루 일당은 한 끼 식사비보다 적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의 뒷면에는, 얼굴 없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새겨져 있다.
우드먼은 공정무역 재단과 글로벌 기업 본사를 직접 찾아가 묻는다.
“당신들은 정말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까?”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영국의 맥도날드 본사 관계자는 “멍청한 마케팅은 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무역 재단은 인증 수수료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며, 그 돈의 대부분을 ‘홍보 활동’에 쏟아붓고 있었다.
결국, ‘공정무역’은 선의가 아니라 ‘이미지 자본’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착한 로고 뒤에는 언제나 철저한 계산이 있다.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의 상품은, 종종 자본주의의 새로운 포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코너 우드먼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진정한 ‘상생의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코트디부아르의 면화 기업 ‘올람’은 품질 향상을 위해 농민에게 비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들의 생계 작물인 옥수수 재배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농부가 가난하면 우리도 망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한 기업은 윤리와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코너 우드먼은 말한다.
“자본주의를 바꾸는 힘은 이상이 아니라 이익이다. 단지 더 똑똑하게, 더 멀리 보는 이익이어야 한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공식은 이렇다.
착한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이기심’이다.
그 이기심이 모두의 삶을 이롭게 할 때, 비로소 자본주의는 건강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