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말한다. “내 자식을 교육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그 말에는 사랑도 있고, 두려움도 있으며, 동시에 책임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다. 아이가 다칠까 봐, 실패할까 봐,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우리는 종종 가장 안전한 길만을 권한다. 그러나 그 안전함이 과연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농구를 지도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마주한다. 처음에는 그저 농구가 좋아서 코트에 나왔던 아이가 어느 순간 진지해진다.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이보다 먼저 망설이는 것은 어른이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재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실패를 가정한다. 물론 누구나 잘할 수 있고, 누구나 성공한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럴 바엔 도전이 아니라 절차가 될 것이다. 도전이란 원래 불확실한 것이고,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높은 선택이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요즘 어른들은 그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한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패 이후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도전해보고 후회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접는 후회는 오래 남지만, 해보고 나서의 후회는 경험이 된다. 경험은 결국 자산이 되고, 설령 선수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운 인내, 자기관리, 팀워크는 아이의 삶 어디에서든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포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안 될 것이라 판단하기도 전에, “너는 안 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실패하지 않는 법은 가르치지만, 실패를 견디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도전 자체를 선택지에서 지워간다.
요즘 아이들이 유독 약해진 것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빨리 배우고 있을 뿐이다. 비교하는 법, 계산하는 법, 손해 보지 않는 법은 익숙하지만, 몸을 던져 부딪히는 법에는 서툴다. 그 결과, ‘도전하지 않는 아이들’이 아니라 ‘도전하지 못하게 자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육은 성공을 보장하는 기술이 아니다. 교육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다. 부모와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옆에 서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이에게 묻기 전에, 먼저 어른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이의 실패가 두려운가. 도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아이에게 용기를 가르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은 어른이다. 도전은 성공해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도전했기에 사람이 자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이들보다 먼저, 어른들이 다시 기억해야 할 때다.
나는 지금도 도전을 즐기고 있다.

#사진 - 이형주 교수, 국제스포츠전문지도자협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