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큐 왕국의 수도 슈리(首里)는 처음부터 국제 도시였던 공간이 아니다. 14세기까지 슈리는 안지(按司) 세력의 군사 거점에 가까운 성채였으며, 정치적 상징성은 제한적이었다. 이 공간을 동아시아 해상 질서에 걸맞은 도성(都城)으로 바꿔놓은 결정적 계기가 바로 류탄(龍潭) 연못과 안고쿠산(安国山)의 조성이다.
이 조경 사업은 삼산 통일을 앞둔 1427년, 국왕 쇼하시(尚巴志)의 명에 따라 국상(國相) 회기(懐機)가 총괄하였다. 회기는 명나라 출신 도래인으로, 중국식 도시 설계와 외교 의례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그는 슈리성을 단순한 방어 거점이 아닌, 외교 사절을 맞이하고 국가의 격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무대로 재설계하였다.
류탄은 슈리성 아래에 조성된 대형 인공 연못이다. 단순한 경관 요소가 아니라, 책봉사(冊封使)를 맞이하기 위한 의례 공간이었다. 연못 수면에 비친 슈리성의 위용은 왕권의 상징이었고, 이곳에서 벌어진 연회와 용주경주(龍舟競走)는 류큐가 문명국임을 과시하는 연출 장치였다. 물과 건축, 의례가 결합된 공간은 말보다 강력한 외교 언어였다.
안고쿠산은 류탄을 파내며 나온 흙으로 쌓은 인공 산이다. 이름 그대로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정치적 기원이 담겨 있다. 이는 풍수적 안정과 왕조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조경이 곧 통치 이념이 되는 류큐식 국가 운영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조경 사업 이후 슈리는 군사 성곽에서 국제 교역 국가의 수도로 변모했다. 나하항과 연결된 장홍제(長虹堤)는 물류와 행정의 동맥이 되었고, 슈리는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상징적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류탄과 안고쿠산은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류큐 왕국이 스스로를 정의한 방식이었다.
류탄(龍潭)과 안고쿠산(安国山)을 통해 류큐 왕국의 국가 설계 방식과 외교 전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조경을 통해 권력을 시각화한 사례로서 동아시아 도시사 연구와 오키나와 역사 인식 확장에 기여한다.
류탄과 안고쿠산은 아름다운 유적이 아니라, 해양 왕국 류큐가 국제 질서 속에서 자신을 증명한 정치 공간이다. 슈리는 이 조경 사업을 통해 군사 거점에서 외교 수도로 탈바꿈했으며, 이는 류큐 왕국 450년 역사의 출발선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