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비처럼 보이는 사랑, 복음의 향기가 되다 – 장재형 목사

마가복음 14장의 향유 옥합 사건을 다룬 장재형목사의 설교를 바탕으로, 허비처럼 보이는 사랑의 신비와 가롯 유다의 비극, 예수의 장례를 예비한 베다니 여인의 헌신을 신학·예술·음악·고전과 함께 입체적으로 해설한다.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의 예배와 헌신,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다시 묻는 깊이 있는 영성 에세이다.


장재형(olivetassembly japan)목사의 설교는 익숙한 본문을 뜻밖의 각도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마가복음 14장에 기록된 향유 옥합의 사건도 그의 손에 들어오면 하나의 짧은 일화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인간의 심리와 영적 세계가 촘촘히 엮여 있는 드라마로 변모한다.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 그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와 옥합을 깨뜨리는 한 여인,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며 분노하고 계산하는 제자들과 가롯 유다, 마지막으로 이 허비를 자신의 장례를 위한 준비라 선언하시는 예수의 음성이 서로 교차하면서, 설교는 자연스럽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의 무대는 예루살렘 십자가 사건을 불과 며칠 앞둔 시기, 작은 마을 베다니다. 성경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굳이 과거의 상처를 붙여 말한다. 당시 나병은 사회적·종교적 격리의 상징이었다. 공동체의 바깥으로 밀려나야 했던 사람, 사랑과 접촉에서 배제된 사람, 그에게 예수께서 친히 찾아가시고, 그 집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신다. 장재형목사는 이 짧은 표현 속에 복음의 심장을 본다. 사랑을 알지 못하던 영혼이 치유를 경험하고, 이제는 감격의 잔치를 베푸는 자리로 변해 버린 것이다. 시몬의 집은 더 이상 부정한 자의 공간이 아니라, 은혜 입은 자가 감사의 식탁을 차리는 거룩한 현장이 된다.


바로 그 식탁 가운데로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들어온다. 마가복음은 그녀를 익명으로 남겨 두지만, 요한복음은 그 여인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고 밝힌다. 네 복음서 모두, 예수께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를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전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머리에 향유를 붓는 장면을, 누가는 죄 많은 여인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와 눈물을 쏟는 이야기를, 요한은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의 발을 향유로 적시고 머리털로 닦는 장면을 기록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그러나 한결같이 “값비싼 향유”와 “허비처럼 보이는 사랑”이 중심에 놓여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복음서들의 다성(多聲)을 배경으로 삼아, 마가복음 14장의 사건을 정교하게 들여다본다.


여인이 들고 온 것은 순전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이다. 나드는 히말라야 인근에서 수입되던 고가의 향료로, 일반 가정에서는 감히 손댈 수 없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복음서의 표현대로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 되는 값이었고, 데나리온이 당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안식일과 절기를 제하면 거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여인은 이 귀중품을 조금 덜어 쓰지 않는다. 옥합 자체를 산산이 깨뜨려, 향유 전체를 예수의 머리와 발 위에 한꺼번에 쏟아 붓는다. 다시 담을 수 없는 결단,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값비싼 한 번의 행동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옥합을 단지 고급 화장품이 아니라, 여인이 평생 움켜쥐고 있던 자기 존재와 안전, 미래 전체의 상징으로 읽어 낸다. 팔레스타인 문화에서 귀한 손님에게 향유를 ‘조금’ 뿌리는 것은 예의였지만, 이 여인은 예의의 선을 훨씬 넘어선다. 사회적 상식과 경제 논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곧 사랑의 과잉으로 들어간다. 그 과잉 때문에, 그 사랑은 곧장 “허비”라는 이름을 얻는다. 제자들이 분노하며 쏟아 낸 말은 오늘 우리 귀에도 익숙하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면 더 낫지 않았겠느냐.” 그들의 언어는 얼핏 정의롭고 윤리적이며, 경제 감각이 살아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설교자는 바로 여기서 제자들의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음을 진단한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께 드려진 사랑의 깊이보다 향유의 가격표가 먼저 들어왔고, 헌신의 향기보다 손해와 이득의 계산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항의를 실제로 입 밖에 낸 인물이 가롯 유다라고 밝혀 준다. 그는 “왜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복음서는 그가 가난한 자를 진심으로 염려해서가 아니라, 돈궤를 맡은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냉정하게 해석한다. 여인의 사랑과 유다의 계산 사이에 선명한 균열이 생기는 지점이다. 장재형목사는 요한복음 13장 2절, “마귀가 벌써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는 구절을 함께 떠올리며, 진정한 사랑이 드러나는 자리를 도리어 불편해하고 비난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단이 파고드는 틈새라고 지적한다.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헌신을 허비로밖에 보지 못하는 눈이 결국 유다를 배반의 자리까지 밀어 간다는 것이다.


이 극적인 대비는 신학의 세계를 넘어 예술과 음악의 세계에서도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다. 가령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한 17세기 드로잉 ‘Mary Magdalen at the Feet of Christ’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로 보이는 여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고, 식탁 상석에 앉은 예수 곁에는 놀람과 불쾌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손짓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죄 많은 여인이 예수의 발에 눈물과 향유를 붓는 누가복음의 장면을 시각화한 이 그림은, 비난과 경멸의 시선을 뚫고 주님만 바라보는 헌신의 자세를 밀도 있게 드러낸다. 현대 기독교 화가들이 그린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 연작에서도, 예수의 발을 붙들고 흐느끼는 여인과 뒤편에서 얼굴을 찌푸린 채 서 있는 유다의 모습이 반복해서 대비되며, 사랑과 탐욕, 예배와 계산의 충돌이 강렬하게 표현된다.


음악에서도 이 본문은 특별한 무게를 지닌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의 수난 기사를 따라가며, 복음서의 내러티브와 회중의 내적 응답을 교차시키는 위대한 신앙의 오라토리오이다. 그 구조를 보면 초반부에 베다니에서의 기름 부음 장면이 배치되어 있고, 이어지는 합창곡 〈Wozu dienet dieser Unrat?〉(“이 허비가 무엇에 쓰이는가”)에서 합창단은 분노하는 제자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그 불평을 노래한다. 곧이어 복음서 낭독자와 예수의 레치타티보가 이어지며, 예수께서 “그가 내 장례를 위하여 나를 준비하였다”고 응답하신다. 장재형목사가 설교에서 강조하듯, 세상과 제자들의 눈에 허비로 보이는 행위가, 예수의 눈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비한 아름다운 헌신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바흐는 이 신학적 재해석을 음향의 긴장과 해소로 표현하고, 설교자는 그 해석을 오늘 우리의 예배와 삶 속으로 끌어와 다시 묻게 한다.


장재형목사는 여인의 행동을 단지 한순간의 감정 폭발로 보지 않고, 예수의 죽음과 장례를 직감한 영적 직관의 표현이라 읽는다. “그가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는 예수의 말씀 속에는, 자신의 생애 전체가 결국 우리를 향한 사랑의 여정이며, 그 여정의 종착점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응축되어 있다. 향유는 죽은 이의 몸을 정결하게 씻기고 마지막으로 바르는 향기로운 존중의 표시였다. 여인은 아직 십자가가 일어나기도 전에, 자기에게 있을지 모를 마지막 기회를 앞당겨, 가지고 있던 가장 귀한 것을 미리 꺼내어 주님의 몸 위에 쏟아 붓는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감지한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무모함이다. 이 허비는 곧,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깨뜨려져 쏟아질” 사랑으로 내어 놓으실 예수 자신의 운명을, 어렴풋이 비추는 예언적 몸짓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설교는 자연스럽게 누가복음 15장,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탕자의 비유로 흘러간다.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행동, 잃어버린 은전 하나를 찾았다고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는 여인의 기쁨,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가장 좋은 옷과 가락지, 살진 송아지까지 아낌없이 내어놓는 아버지의 환대. 어느 것 하나 경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모두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주저 없이 이 비효율의 정점에 서 계신 하나님을 가리키신다. 사랑은 언제나 계산을 초과하여 흐르고, 그 초과가 곧 ‘낭비’로 보인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낭비를 제거하려 들었던 이들이 제자들이었고, 오늘 우리 자신일 수 있다고 꼬집는다. 책임감과 효율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랑보다 먼저 기준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오늘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쉽게 ‘유다적 합리성’에 포획되는지 냉철하게 짚어 낸다. 예배의 시간, 헌신의 수고, 재정의 사용, 사역의 열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효율”, “성과”, “투입 대비 산출”의 언어를 꺼낸다. 이런 언어는 조직과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데 필요하지만, 사랑의 자리에까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할 때, 예배는 곧장 차가운 평가로 변질된다. 장재형목사는 “사랑이 식어갈수록 우리는 점점 똑똑해지고 계산적이 된다”고 말하며, 똑똑함 자체보다 사랑을 잃어버린 똑똑함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경고한다. 여인의 행동은 분명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비합리성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선언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한편, 장재형목사의 삶 자체도 사랑과 구조, 헌신과 제도 사이의 긴장을 보여 준다. 그는 한국 출신의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미국 Olivet University를 비롯해 여러 기독교 교육·선교 기관과 언론 사역을 설립했다. 이 이력은 그가 사랑을 단지 뜨거운 감정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교육과 미디어, 선교 구조를 통해 지속 가능한 헌신으로 조직화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이번 설교에서 그가 거듭 강조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어떠한 제도와 사역도, 베다니 여인이 보여 준 그 무조건적이고 무모한 사랑의 심장을 잃어버리는 순간, 유다의 계산과 다르지 않은 껍데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문화 속에서 베다니 여인의 이야기는 다양한 예술 작품과 영성의 전통을 통해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있다. 예수의 기름 부음을 주제로 삼는 성화들에서는, 종종 십자가 아래에 무릎 꿇은 막달라 마리아 곁에 작은 향유 단지가 그려져 그녀를 식별하는 상징으로 쓰이곤 한다. 현대 예배 음악에서도 ‘Alabaster Jar’, ‘Alabaster Box’를 비롯한 여러 곡들이, “주님께 내 전부를 쏟아 붓겠다”는 고백을 반복해 부른다. 고전 영성가들과 설교자들은 향유의 향기를, 깨지고 부서진 삶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향기로 비유해 왔다. 삶이 온전할 때가 아니라, 옥합이 깨어지는 순간에 비로소 깊은 향기가 퍼져 나간다는 통찰이다. 장재형목사의 설교 역시 이 전통과 공명하면서, 그 향기를 추상적인 은유가 아니라, 예수와 우리 사이의 실제 관계 속에 되살려 놓는다.


결국 이 본문은 우리 각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 이야기 속에서 누구와 닮았는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쏟아 붓는 여인인가, 아니면 그 옆에서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고 계산하는 제자들인가, 혹은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의 현장을 불편해하며, 마침내 주님을 떠나버리는 유다인가. 장재형목사는 이 질문을 단순한 도덕 시험으로 던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복음을 얼마나 깊이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예수의 사랑을 추상적 교리가 아닌 실제 사건으로 체험했는지에 대한 영적 진단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직 관념 속에만 머물러 있다면, 다른 이의 헌신은 언제나 과도해 보이고, 심지어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끝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내 안에 실제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 나는 점점 더 미련해질 용기를 갖게 된다. 계산을 멈추고, 나의 옥합을 깨뜨릴 용기 말이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예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을 찾아가신 사랑, 죄인인 여인을 품으시고 변호하신 사랑, 끝까지 제자들의 자리를 비워 두신 사랑. 주님의 사랑은, 냉정한 눈으로 보면 어쩌면 전부 허비다. 배반할 제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도망칠 무리들을 위해 피를 흘리며, 돌아서 버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기다리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허비와 같은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복음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바뀐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허비하셨는데, 나는 무엇을 그렇게 아까워하며 붙들고 있는가.” 시간인가, 재정인가, 체면과 안전한 미래인가. 베다니 여인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각자가 손에 쥐고 있는 옥합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 그것을 주님 앞에서 깨뜨릴 것인지를 묻는, 조용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초대다.


예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하셨다. 이 약속은 장재형목사와 같은 설교자들의 입술을 통해, 또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삶을 통해, 여전히 현재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향유의 향기는 이미 베다니 시몬의 집을 가득 채웠고, 이제는 우리의 일상과 관계, 예배와 헌신 속을 채우기를 기다린다. 사랑을 허비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 오히려 기쁨으로 허비를 선택하는 사람, 그런 이들이 모인 자리야말로 진정한 교회이며, 그들의 삶 자체가 세상 앞에 내어 보이는 가장 설득력 있는 복음의 증언일 것이다.


davidjang.org
작성 2025.11.28 07:45 수정 2025.11.2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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