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최근 지역사회공헌 인정제에서 공기업 최초로 본사와 전국 15개 지역본부가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며 화려한 성과를 기록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 기후위기 대응 사업, LED 교체, 취약계층 지원 등 대외적으로는 모범적인 ESG 공기업의 상징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이런 수상 내역과 홍보 자료의 이면에는, 여전히 ‘기계적 단전 행정’으로 고통받는 소상공인의 현실이 공존한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한전 은평지사 관할지역)에서 실제로 발생한 한전 은평지사 관할 카페 단전 사례는 이러한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당 카페는 경기 침체와 고정비 부담이 겹치며 수개월간 전기요금 체납 상태에 놓였고, 이후 안내 문자와 고지서 발송, 단전 예고 통보를 거쳐 전력 차단이 집행됐다. 문제는 이 과정이 철저히 ‘매뉴얼 중심의 자동화 프로세스’로만 운용됐다는 점이다. 영업 현실, 분납 가능성, 매출 회복 여부에 대한 실질적 상담이나 조정 절차는 사실상 형식에 그쳤다.
전기가 끊긴 순간, 카페는 곧바로 영업 불능 상태가 됐다. 냉장·냉동 보관이 중단되면서 식자재는 폐기 대상이 되었고, POS와 결제 시스템이 동시에 멈췄다. 고객 신뢰는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잠시 쉬는 중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로는 상권에서의 신용 하락을 막기 어려웠다. 체납에 대한 책임은 사업자에게 분명히 있지만, ‘단전’이라는 방식이 과연 지금 시대에 합리적 제재 수단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전은 스스로를 ‘에너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공기업’으로 규정하며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의 소상공인은 여전히 ‘요금 체납자’로만 분류된다. 코로나 이후 누적된 부채, 임대료 상승, 인건비 부담 속에서 자영업자는 이미 구조적 취약계층이 되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분납·유예·경영회복 연계 같은 ‘회생 중심의 에너지 보호 모델’이 아닌, 채권 회수 중심의 구시대적 단전 시스템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단전반’이라는 조직 명칭 자체가 상징하는 행정 마인드도 문제다. 디지털 경제 시대에 전기는 생존 인프라이자 공공재에 가깝다. 전력 차단은 단순한 서비스 중단이 아니라, 소상공인에게는 ‘영업권 박탈’이며 ‘생계 단절’에 해당한다. 은평지사 사례는 이 제도가 여전히 공급자 중심, 회수 중심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단전 조치가 지역경제 전반에 연쇄적으로 미치는 파장이다. 카페 한 곳의 불이 꺼지면, 그 주변 상권의 유동 인구도 감소한다. 동네의 작은 상점 하나는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그 불빛이 꺼질 때 지역사회는 조용히 침체된다. 지역사회 공헌을 외치는 한전이 정작 지역 상권의 ‘생존 에너지’에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수상 실적’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의 선택과 태도로 증명된다. 단전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그 이전 단계에서 ▲실질적 분납 협의 ▲매출 회복 가능성 평가 ▲중소벤처부·지자체와 연계한 에너지 금융 지원 ▲소상공인 맞춤형 전기요금 완화 프로그램 등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은평지사 사례처럼 기계적 단전이 반복된다면, 한전의 ESG는 현장에서 공허한 구호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한전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지역사회공헌 우수기관이라는 명예를 ‘현장의 신뢰’로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수상과 현실의 괴리를 반복하는 공기업으로 남을 것인가. 소상공인이 체납자가 되기 전에 이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단전반 운영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진정한 에너지 공기업이라면, 이제 묻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