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매일 ‘삑’ 소리와 함께 산다. 마트 계산대에서, 도서관에서, 혹은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 위에서 울리는 이 짧고 건조한 기계음은 현대 자본주의가 숨 쉬는 소리와도 같다. 검은 막대와 흰 여백이 교차하는 기묘한 줄무늬, 바코드(Barcode). 이것은 너무나 흔해서 투명 인간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 작은 무늬 안에는 인류의 문명을 지탱하는 거대한 정보의 혈관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 차가운 디지털 기호의 시작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마이애미 해변의 모래사장 위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오늘 나는 그 흑백의 줄무늬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고뇌와 우연,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인 서사시를 이야기하려 한다.
파도 소리 사이에서 탄생한 침묵의 언어
시간을 거슬러 1948년으로 가보자.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절, 청년 노먼 조셉 우드랜드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물건의 정보를 자동으로 읽어내는 시스템, 그것은 당시로서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연구에 지친 그는 도망치듯 마이애미 해변의 조부모님 댁을 찾았다.
따가운 햇살과 규칙적인 파도 소리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그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엉뚱하게도 소년 시절에 배운 ‘모스 부호’였다. ‘돈, 돈, 츠, 츠...’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소리의 언어. 그는 무심코 손가락 네 개를 모래사장에 푹 찔러 넣고는 자신의 몸쪽으로 쭈욱 끌어당겼다.
그 순간, 모래 위에는 네 개의 긴 선이 생겨났다. 손가락의 힘과 각도에 따라 굵기가 제각각인 선들. 우드랜드는 그 모래 그림을 내려다보며 전율했다. “소리를 시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점은 얇은 선으로, 선은 굵은 선으로. 그것은 소리의 리듬이 시각적인 패턴으로 치환되는, 아날로그가 디지털의 씨앗을 품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훗날 그는 이 순간을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회상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절실한 질문을 품은 자에게만 허락된, 자연이 건네준 영감의 선물이었다.
과녁에서 직사각형으로: 에고(Ego)를 버린 용기
하지만 영감이 곧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우드랜드가 처음 특허를 낸 디자인은 우리가 아는 직사각형이 아닌, 양궁 과녁을 닮은 ‘동심원(Bull’s eye)’ 모양이었다. 어느 방향에서 스캔해도 읽힐 수 있도록 고안된, 나름대로 완벽한 형태였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읽어낼 빛(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레이저 기술이 발명되고 나서야 바코드는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인 아이러니와 마주한다. 바코드의 표준을 정하는 1970년대의 ‘대전쟁’ 당시, 우드랜드는 IBM팀에 속해 있었지만, 경쟁사였던 RCA는 우드랜드의 초기 아이디어인 ‘원형 바코드’를 들고나왔다. 반면 IBM의 동료 조지 라우어는 ‘수직선 바코드’를 제안했다.
원형은 인쇄할 때 잉크가 조금만 번져도 오류가 났지만, 수직선은 아래로 흘러내려도 정보를 읽는 데 지장이 없었다. 우드랜드는 갈림길에 섰다. 자신의 원래 아이디어인 ‘원형’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더 실용적인 동료의 ‘수직선’을 지지할 것인가. 그는 놀랍게도 후자를 택했다. 발명가로서 자존심보다 기술의 완성을 택한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계산대에서 엉뚱한 물건값이 찍히는 혼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에고’를 죽이고 ‘최선’을 선택한 그 겸손함이야말로 바코드를 세계 표준으로 만든 진짜 힘이었다.
두려움이 빚어낸 괴물: 원숭이와 666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환영받는가? 아니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 바코드가 상용화되던 시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붉은 빛, ‘레이저’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IBM 변호사들은 “스캐너가 사람 눈을 멀게 할 것”이라는 소송을 걱정해 전전긍긍했다. 급기야 개발팀은 레이저의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공수해 와 실험까지 감행해야 했다. 문명의 이기가 원시의 생명체를 통해 검증받아야 했던,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종교적 광기였다. 바코드의 양 끝과 가운데에 있는 긴 가이드라인이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숫자 ‘666’을 암시한다는 음모론이 들불처럼 번졌다. 사람들은 이 편리한 도구가 인간을 통제하는 ‘악마의 표식’이라 믿으며 거부했다. 2014년 러시아의 한 우유 회사가 바코드 위에 붉은 십자가를 그려 넣었던 해프닝은, 기술의 차가운 진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 마음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우리는 편리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 편리함 뒤에 숨은 통제와 감시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모순적인 존재인 것이다.
15,000달러의 가치, 그리고 남겨진 질문
우여곡절 끝에 1974년 6월, 오하이오주의 한 슈퍼마켓에서 껌 한 통이 ‘삑’ 소리와 함께 팔려나갔다. 그 소리는 대량 소비 사회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오늘날 바코드는 하루 수십억 번 스캔되며 천문학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정작 이 혁명의 창시자 우드랜드와 실버가 특허로 번 돈은 단돈 15,000달러에 불과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의 이치일지 모른다. 위대한 혁신은 대개 창시자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기보다, 세상 전체를 풍요롭게 하는 방식으로 보상된다. 그들은 돈 대신,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명예를 얻었다. 모래사장의 낙서가 전 세계를 잇는 거대한 약속이 되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수많은 불면의 밤을 생각한다.
일상의 무늬를 다시 보다
이제 다시, 당신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라. 그곳에 찍힌 흑백의 줄무늬는 단순한 가격표가 아니다. 그것은 모스 부호라는 과거의 유산과 레이저라는 미래의 기술, 그리고 인간의 두려움과 그것을 넘어선 용기가 촘촘하게 엮인 역사의 직물이다.
가장 위대한 변화는 때로 가장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아이디어가 우리 곁을 스쳐 간다. 우드랜드가 모래 위에 손가락을 꽂았던 그 순간처럼, 오늘 당신의 무심한 생각 하나가 내일의 세상을 바꿀 바코드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라. 혁신의 단서는 언제나 우리 발밑, 모래사장 어딘가에 숨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