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일의 시는 ‘시간의 물리적 흐름’을 ‘창조주의 문법’으로 치환해낸 시다. <새해 첫날 이야기>는 소박하고 친근하지만, 시가 품고 있는 ‘쉼표의 신학’과 ‘상처의 연금술’이라는 깊은 미학을 담아내기엔 다소 평범한 감이 있다.
겨울이 봄에 건네는 미완의 전승
겨울의 거친 손이 / 봄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속삭인다 / “너는 내가 다 잇지 못한 미완의 문장이다”.
겨울은 매정하게 떠나지 않는다. 시인은 겨울을 ‘거친 손’을 가진 노련한 서술자로 묘사한다. 그는 이제 막 고개를 내미는 어린 봄의 어깨를 토닥이며, 자신의 남은 서사(敍事)를 전수한다. "너는 내가 다 잇지 못한 미완의 문장이다." 이 얼마나 시린 위로인가. 우리가 지난 1년간 겪은 수많은 아쉬움과 못다 한 꿈들이 결코 폐기된 쓰레기가 아니라, 다가올 새해라는 문장을 완성하기 위한 소중한 첫 구절이라는 선언이다. 생명의 싹을 기다리는 이의 심정으로 볼 때, 이 구절은 고난의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 지지대다.
상처를 갈아입고 달력이 되는 기적
푸른 태양이 빛의 음절을 새기고 / 시간이라는 두꺼운 책 한 장을 넘긴다 / 어제의 상처는 아무 말 없이 / 오늘의 달력이 된다.
어제의 상처는 흉터로 박제되지 않고 ‘오늘의 달력’이 된다. 시인의 통찰 속에서 시간은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연금술적인 변화다. 푸른 태양이 빛의 음절을 새길 때마다, 우리는 아팠던 기억의 갈피를 넘겨 내일의 백지로 만든다. 상처가 달력이 된다는 것은, 당신의 아픔이 이제 누군가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이자 시간을 견뎌내는 영적인 근육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무 말 없이 달력이 된 그 상처들이 모여 비로소 2026년이라는 새로운 살결이 돋아난다.
창조주의 지우개, 쉼표라는 숨구멍
다시 밝고 맑은 아침 / 창조주께서 ‘좌절’이라는 마침표를 지우고 / 그 자리에 숨구멍 같은 쉼표 하나 얹어 두신다.
가장 눈부신 아침, 창조주는 우리 몰래 지우개를 드신다. 우리가 스스로 ‘끝’이라고 믿으며 꾹 눌러 찍었던 ‘좌절’이라는 무거운 마침표를 지우신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느다란 쉼표 하나를 얹어 두신다. 이것은 신의 유머이자 가장 극적인 자비다. 쉼표는 멈춤이 아니라 ‘숨 고르기’이며, 다음 단어를 부르는 ‘기다림’이다. 광야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숨을 쉴 수 있는 한 모금의 공기다. 그 쉼표의 여백이 바로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할 생명의 틈새다.
지엄하고도 애틋한 사랑의 명령
새해, 낡은 숫자가 옷 갈아입는 순간이 아니라 / 삶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 지엄하고도 애틋한 사랑의 명령이다.
시의 결말은 단호하다. 새해는 숫자의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끝자락, 즉 벼랑 끝에 선 우리에게 내려진 ‘사랑의 명령’이다. 그런데 그 명령이 참 이상하다. 가장 지엄하면서도 가장 애틋하다. "다시 시작하라." 이 명령은 낡은 옷을 벗고 생의 본질인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하늘의 지명(指名)이다. 2026년은 당신이 얼마나 성공하느냐의 성적표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더 깊이 사랑하느냐의 고백록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쉼표 위에서 다시 사랑을 발명해야 한다.
시인의 통찰에 따르면,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서사가 완성되는 과정 중의 일부이며, 그 끝에는 항상 새로운 소망의 문장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는 기독교 인문학적 시각은 단순히 시간의 물리적 교체를 넘어, 십자가의 야성으로 세상을 다시 사랑하겠다는 실존적 결단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인이 포착한 그 '가느다란 쉼표'는 결국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그분의 세밀한 숨결인 셈이다.
창조주께서 우리의 가장 아픈 좌절 위에 마침표 대신 숨구멍 같은 쉼표 하나를 얹어 두셨다면, 우리는 이제 그 여백 위에 어떤 사랑의 이야기를 새로 쓸 것인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