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류대로 창조된 생명, 하나님 질서의 비밀
창세기 1장 11–25절은 생명의 질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11)는 말씀은 창조의 핵심 원리를 선포한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를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이는 생명의 형태와 본질, 질서가 하나님의 의도 속에서 세밀하게 설계되었다는 선언이다.
오늘날 인류는 환경 위기와 생태 파괴라는 현실 앞에서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다시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각 피조물이 제 위치와 역할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류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 ‘레미노’(לְמִינֵהוּ) 로, 구분된 질서와 고유한 형태를 뜻한다. 하나님은 생명을 혼돈 속에 던져두지 않으시고, 각각의 생명체에게 정체성과 한계를 함께 주셨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분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답고, 나무는 나무답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종류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현대 사회의 무분별한 동일화, 획일화된 가치관에 대한 경고로도 들린다. 각 존재는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선하다. 다양성 속의 질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 원리이다.
창세기의 첫 장면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질서를 세우셨다.
빛과 어둠, 물과 땅, 식물과 동물 — 모든 것이 구분되고 제자리를 찾으면서 ‘생명’이 시작되었다. 이 질서는 강제가 아니라 사랑의 체계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 하시며 그 질서 속의 조화를 기뻐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이 이 질서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생태계의 붕괴, 종의 멸종, 환경 오염은 단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질서의 붕괴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창세기 1장은 단조로움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한히 다양하고 풍성하다. 식물은 각기 다른 씨를 맺고, 동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잇는다.
이 다양성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다양성이 무너지면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고, 그 속에 인간의 삶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은 생태적 균형의 기초이며, 인간에게 ‘지배가 아닌 돌봄의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는 창조 질서를 보존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환경 보호는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신앙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이 말씀은 오늘날 생명윤리의 근간이 된다. 인간이 생명을 도구로 삼을 때, ‘종류대로’라는 창조 원리를 거스르게 된다.
유전자 조작, 생명 상품화, 동물 실험 등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고민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존중하라고 하셨지, 조작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생명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 시선이 회복될 때, 인간은 비로소 창조 세계의 동역자로 설 수 있다.
창세기 1장 11–25절은 단순한 창조 기록이 아니라, 질서 속의 생명, 다양성 속의 조화를 노래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종류대로”라는 말씀은 생명의 경계가 아니라, 조화의 법칙이며 존엄의 선언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다.
오늘 우리는 그 창조의 질서를 기억하며, 각자 ‘자신의 종류대로’ 살아가는 신앙의 길 위에 서야 한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실 것이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