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불의 기운을 머금은 붉은 말의 해는 정체를 거부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재촉한다. 그러나 쉼 없는 질주가 언제나 해답은 아니다. 달리기만 하다 보면 길 위에서 서로를 밀쳐내고, 마침내 함께 가야 할 방향마저 잃기 쉽다. 새해의 문턱에서 우리는 속도보다 균형을, 승부보다 공존을 다시 묻는다. 갈라진 마음과 메마른 관계 사이에서 숨을 고를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자연은 오래전부터 그 해답을 ‘기수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펼쳐 보여왔다.
강물은 산골짝 작은 샘에서 시작해 굽이굽이 대지를 적시며 흐른다. 거칠 것 없던 물줄기가 마침내 거대한 바다와 맞닿는 곳, 우리는 그곳을 ‘기수역(汽水域)’이라 부른다. 민물과 바닷물이 몸을 섞는 이 완충지대는 단순히 물길이 만나는 지점이 아니다. 먼 길을 달려온 민물에게는 바다의 법도를 익히는 배움터요, 생명을 품어내는 풍요로운 안식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사회는 어떤가. 강 하구에 세워진 거대한 하굿둑과 방조제처럼, 우리 마음에도 소통을 가로막는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다. 정치·사회·문화를 막론하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극단적 대결이 일상화 되었다. 갈등을 조율하던 원로의 지혜와 마을의 자정 능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자연의 기수역(汽水域)이 파괴되면 생태계가 죽어가듯, 마음의 완충지대가 사라진 우리 사회 역시 메말라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연이 주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라진 기수역을 우리 마음속에 다시 복원하기 위해 세 가지 삶의 태도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적응의 시간’을 허용하는 여유다. 기수역에 머무는 물고기들은 급격한 염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그곳에서 충분히 머문다. 우리도 낯선 생각이나 타인의 가치관을 마주했을 때 즉각적으로 거부하거나 비난하기보다, 내 안에서 소화될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틀렸다”고 밀어내기 전에 “그럴 수도 있겠다”며 잠시 머무는 여유가 마음의 기수역을 넓히는 시작이다.
둘째, ‘중재의 언어’를 회복하는 것이다. 기수역은 민물도 바닷물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 모두를 품고 있다. 극단적인 흑백논리의 언어를 버리고, 서로의 접점을 찾는 ‘완충의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과거 마을의 어른들이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며 갈등을 녹여냈듯, 우리 스스로가 관계 속에서 날카로운 모서리를 깎아내는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공감의 정서’라는 흙을 밟아야 한다. 콘크리트 벽에 갇힌 도시 문화는 우리를 뿌리 없는 나무처럼 고립시켰다. 온실 속 화초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다. 나만의 이익과 향락에 매몰되지 않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우리’라는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차가운 회색 벽을 허물고 타인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관심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을 되살리는 영양분이 된다.
기수역의 경제적·생태적 가치는 일반 경작지의 250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 마음의 기수역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의 둑을 조금만 허물어 세상과 소통할 때, 우리가 얻는 정서적 풍요와 삶의 상승효과는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할 것이다.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처럼 강물이 바다를 거부하지 않고, 바다가 강물을 따뜻하게 안아주듯 우리 삶도 그렇게 흘러야 한다. 이제 각자의 마음속에 깊고 넓은 기수역 하나씩을 품어보자. 소통과 이해가 넘실대는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인간다움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瓦也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강 따라 물 따라>(신간)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