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소통하는 동물이다. 소통은 나와 공명하는 상대방이 있다는 희망이다. 세계의 응답가능성을 기다리는 행동이다. 이 소통하는 동물에게 믿기 힘든 진실이 있다. 어떤 이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그럴만한 환경이 아니며, 심지어는 희망을 꺾는 적대의 언어로 응답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착취하는 언어 말이다. 좌절한 사람은 세계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운 좋은 인간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쉽게 만난다. 이들은 가족일 수도, 이웃일 수도 있다. 그들은 신뢰의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운이 나쁜 인간이다. 이들은 그 괴리를 직면한 뒤에도 극복하지 못한다. 세계와의 대화를 줄이고, 서서히 침잠한다. 모두에 적대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바로 그들을 위해 환대의 언어를 제도화한 공간이 있다. 학교다. 학교는 아직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게 세계의 가능성을 믿는 어른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장소다. 우리를 믿고 용기내 도전하라고, 낯선 이에게 친구하자고 말을 걸어보라고 자꾸 보채고 실수해도 괜찮다 말해준다. 그러라고 우리가 이곳에 와 있다고, 이곳을 만들었다고 그들은 말해준다.
교육철학자 비에스타가 말하듯 학교는 세계로부터 나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만나게 하는 공간이다. 교과서는 세계의 작동방법을 보여주고, 선생님들은 스스로 그 증거가 되어, 증거가 되려 애쓰며 생활을 구성한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 노력들에 난 감동받곤 했다. 가정통신문을 나눠줄 때 실수한 맞춤법을 고백한 선생님, 환경문제를 토론하다 학교잔반제로 캠페인을 기획해보자는 선생님 등. 그들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한 것 같다. 그런 공간을 지키고 싶었으니까.
가면 갈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이 환대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조너선 하이트가 쓴 『불안 세대』에 따르면 세상을 불안하고 어둡게 보는 친구들이 너무 많고 전 세계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학교와는 무관해 보이는 미디어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AI의 발전이 가져온 탈진실의 사회는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어린이들의 주의만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컨텐츠가 더 많아지고, 그들은 세계와의 상호작용에서 환대보다는 배신과 혐오를 더 자주 경험하고 있다. 세계의 민낯을 너무 빨리 만나고 있고, 때로 세계의 단면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이들은 소통하는 인간보다는 고립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다시 소통하는 동물로 돌아왔으면 한다. 물론 이들도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목소리를 내고, 협력하며 성장할 수 있다. 학교는 이들을 길러내는 공간이 되도록 바뀌어야 하며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이제라도 변화한 세계에 맞는 대화법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걸 위한 책을 쓰고 있다.
K People Focus 아사달97 칼럼니스트
대화하는 개인주의를 공부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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